고고학적 발견

2000년 전 신생아 무덤 약 60기, 프랑스 님 로마 성벽 아래에서 발견

약 2000년 전에 매장된 신생아 무덤 60기 가량이 최근 프랑스 님(Nîmes) 시의 고대 로마 성벽 기슭에서 발굴되었습니다.

2000년 전 신생아 무덤 약 60기, 프랑스 님 로마 성벽 아래에서 발견

높았던 고대의 영아 사망률

2세기경 제작된 이 우화적 부조는 당시 매우 높았던 유산율을 보여줍니다. 전문가들은 당시 세 명 중 한 명이 출생 후 첫해 안에 사망했으며, 성인까지 살아남은 아이는 절반에 불과했다고 추정합니다.

성벽 밖 '벽외 지역'에 집중된 영유아 무덤

이번 발견은 매우 희귀한 사례입니다. 볼크족(Volques)의 옛 수도였던 님의 로마 성벽 아래에서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 고고학자들이 최근 약 60기의 어린이 무덤, 그중 약 50기는 신생아 무덤으로 추정되는 유구를 발굴했습니다. 서기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가늘고 애틋한 인골들은 도시 성벽 바깥쪽, 즉 '벽외(extra-muros)'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100㎡ 남짓한 면적에 걸쳐 탑 한 개의 기단 부위나, 201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전문가들이 확인한 130m 구간의 로마 방벽을 따라 드러난 세 개의 보루 중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오랑주(Orange)나 프레쥐스(Fréjus)의 성벽과 비교될 만큼 당대 최대 규모에 속하는 이 6km에 달하는 석벽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기원전 63년~서기 14년)가 서기 5년부터 30년 사이에 축조한 것입니다.

"첫 어린이 무덤은 2017년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올해 이렇게 많은 무덤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발굴을 총괄한 리샤르 펠레(Richard Pellé) 고고학자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입니다.

매장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일부는 암포라(amphora) 항아리에, 또 일부는 '올페(olpé)'—액체를 따르는 데 쓰인 그리스식 그릇을 가리키는 용어—에 안치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땅에 직접 묻혔는데, 시신은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은 수의로 덮여 있었거나 단순한 바구니에 싸여 있었고, 무덤임을 표시하기 위해 돌 하나만 놓아두는 간결한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2000년 전 신생아 무덤 약 60기, 프랑스 님 로마 성벽 아래에서 발견

님(가르 주) 로마 성벽의 탑 한 개 아래에서 발견된 주산기 매장 유구 중 하나(거푸집·암포라 또는 땅속 매장). © Inrap

연구진은 또한 화장(火葬)의 증거로 보이는 두 개의 항아리도 확인했습니다.

일부 무덤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이들 주산기 매장으로 인해 교란된 기존 성인 무덤 자리 위에 파였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온 것은 어린 자녀를 묻을 다른 장소가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라고 리샤르 펠레는 설명합니다. 물론 부유한 가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친족 전원을 모신 납골당을 소유했으며, 나르본 갈리아(Gallia Narbonensis)를 관통하던 로마 도로인 도미티아누스 가도(Via Domitia)를 따라 지금도 볼 수 있는 웅장한 영묘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2000년 전 신생아 무덤 약 60기, 프랑스 님 로마 성벽 아래에서 발견

모든 무덤이 발견된 성곽 탑 중 하나의 잔존부. © Inrap

아이들 못지않게 정성껏 묻힌 개 네 마리

발굴 현장에서는 어린이 무덤에 준하는 정성으로 매장된 개의 무덤 네 곳도 발견되었습니다. 그중 한 곳에는 수직으로 세운 비석이 표지 역할을 했으며, 유골 옆에서는 카론(Charon)에게 바치는 오볼(obol) 동전이 함께 나왔습니다. 이는 명계의 강 스틱스(Styx)를 건너는 망자의 영혼을 배에 태워 나르는 뱃사공에게 지급하기 위한 것으로, 클라우디우스 황제(기원전 10년~서기 54년) 시대에 주조된 동전입니다.

이 아이들 사이에서 발견된 개들의 존재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기원전 2세기 그리스 아테네 아고라에서 발굴된 수백 구의 영아 및 태아 유골에 대한 2015년의 연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우물 바닥에서 400구가 넘는 영아 유골이 개의 뼈와 뒤섞인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정화 의식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대 문헌은 이 동물이 악한 영향을 흡수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기록했으며, 출생과 죽음, 특히 미숙아의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 헤카테(Hecate)와의 연관성도 언급하고 있습니다'"라고 Sciences et Avenir는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는 고대 지중해권에서 태아, 신생아, 영아를 위한 특별한 장례 문화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결과입니다. 님에서 발굴된 유구 역시 대부분 태아와 생후 6개월 이내의 영아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이제 이 중요한 발견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유적 보존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40년간의 현지 발굴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어린이 무덤은 약 30기에 불과했습니다.

고대의 모성과 유아기

다양한 종류의 사료들은 높은 사망률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에게 보내졌던 관심의 깊이를 잘 보여줍니다. 서기 2세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 Aurèle)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론토(Fronton)는 차례로 요절한 다섯 아이를 상실한 슬픔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저는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다섯 아이를 잃었습니다. […] 저는 아이들이 갓난아이였을 때 그들을 잃었습니다. 이처럼 저는 위로해 줄 아이 하나 없이 늘 제 자식들을 잃어왔습니다."

이와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은 베로니크 다센(Véronique Dassen)의 『옴팔레의 미소: 고대의 모성과 유아기(Le sourire d'Omphale)』(렌 대학교 출판사, 2015)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