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희생, 식인 풍습, 그리고 복수 — 고고학이 밝혀낸 멕시코 정복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아즈텍 제국 멸망 500주기를 맞아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가 중부 도시 줄테펙-테코아케(Zultépec-Tecoaque)에서 수십 년간 진행한 발굴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1521년,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8개월 전 주민들에게 포로로 잡혀 희생된 수백 명의 스페인인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습니다.

희생, 식인 풍습, 그리고 복수 — 고고학이 밝혀낸 멕시코 정복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

지금까지 조사된 도시 우물 22곳 중 한 곳의 모습입니다.

※ 본 기사는 일부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 의식의 밤

1521년 1월 혹은 2월의 어느 저녁. 아즈텍에 동맹한 원주민 아콜우아(Acolhua)족은 줄테펙에서 불과 시간의 신 시우테쿠틀리(Xiuhtecuhtli)를 기리는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축제가 아마도 마지막일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인들의 복수가 자신들에게 닥칠 테니까요.

어떤 복수였을까요? 약 1년 전, 아콜우아족은 정복자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Pánfilo de Narváez) 원정대 소속의 스페인 분견대를 포획했습니다. 유럽 출신 군인 수십 명과 여성·아이들, 그리고 서인도제도의 타이노족, 틀락스칼텍족, 토토낙족, 마야족 등 수백 명의 원주민 동맹군과 메스티소, 물라토, 잠보까지 포함된 대규모 행렬이었습니다. 길고 참혹했던 8개월간의 감금과 고통 속에서 아콜우아족은 포로들을 이 땅의 선스페인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고, 그들의 살점을 먹었습니다. 그날 저녁, 그들은 또 다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군대가 자신들에 대한 새로운 학살을 위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고학이 증언하는 끔찍한 역사

이 끔찍한 이야기를 고고학이 생생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멕시코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INAH)는 줄테펙에서 30년간 수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현재 이곳은 나후아틀어로 '그들이 그들을 먹은 곳'이라는 뜻의 이름, '테코아케(Tecoaque)'로 불립니다. INAH는 이미 2015년에 발견 사실을 공개한 바 있지만, 그 이후 진행된 추가 발굴을 통해 이 피비린내 나는 사건에 대한 더 많은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깊은 우물 안에서 발견된 포로 행렬 구성원들의 유골이 있습니다. 이는 아콜우아족이 서둘러 치른 제사의 흔적을 지우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도시의 주요 도로변에 설치된 함정과 원시적인 방어 시설의 흔적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코르테스의 동맹 곤살로 데 산도발(Gonzalo de Sandoval)이 이끄는 응징 원정대가 도착했을 때, 이 방어 시설 중 어느 하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도망치다 처형당한 여성과 아이들

"도시를 파괴하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죽여라. 식인종들을 응징하라." 1521년 3월 초 테코아케에 마침내 도착한 데 산도발이 받은 명령이었습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당시 이 도시에는 최대 5,000명의 주민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INAH는 성명을 통해 "도시의 전사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남겨진 여성과 아이들이 주요 희생자였다"며 "주요 도로를 따라 120미터 구간에서 열두 명의 여성 해골이 발견되었는데, 마치 5~6세 사이 열 명의 아이들의 뼈를 '지키고' 있는 듯한 배치였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발굴 현장 사진을 보면 여성들의 두개골이나 팔뼈가 더 작은 아이들의 유골을 향해 놓여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INAH는 "무덤의 위치로 보아 이 사람들이 도피하던 중 급하게 학살되고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며 "건물 안으로 피신했던 여성과 아이들은 시신이 훼손되었으며, 잘린 뼈들이 발견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신전은 불타 없어졌고 석상들은 목이 잘렸다"고 전했습니다.

'제물'로 바쳐지고 먹힌 이들

그러나 1520년부터 1521년까지 줄테펙-테코아케에서는 폭력이 사방에서 몰아쳤습니다. 아콜우아족은 포로들을 극도로 잔혹한 환경에 가둔 것으로 보이며, 점차 그들을 제물로 바치고 먹었습니다. 뼈에는 고기가 발려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포로로 잡힌 스페인 여성들의 머리는 남성들의 것과 함께 해골 선반에 걸렸고, 뼈 분석 결과 이 여성들은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다른 제사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반으로 갈라진 채 발견되었고, 그 근처에서는 겨우 3~4세 아동의 토막 난 유해가 출토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스페인 남성은 '엘 킨토 솔(El Quinto Sol)', 즉 '다섯 번째 태양'이라는 신화와 관련된 의식에서 토막 살해된 뒤 불태워졌습니다.

멕시코 역사에서 이중적 의미를 지닌 도시

현장의 현직 고고학 감독 엔리케 마르티네스 바르가스(Enrique Martínez Vargas)는 줄테펙-테코아케가 멕시코 역사에서 이중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스페인의 진격과 원주민 동맹군에 맞선 저항의 거점이었고, 이듬해에는 강대한 아즈텍 제국 정복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수도 멕시코-테노치티틀란은 바로 500년 전인 1521년에 함락되었습니다. 따라서 6년 전 공개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번 발표는 무엇보다 이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