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러시아 정착민에게 불탄 알래스카의 목조 요새 '시스키노우', 200년 만에 땅속에서 흔적이 드러나다

첨단 과학 기술의 힘으로, 두 명의 미국 연구자가 19세기 초 러시아 정착민들에 의해 파괴된 요새의 흔적을 알래스카 땅속에서 마침내 찾아냈습니다.

러시아 정착민에게 불탄 알래스카의 목조 요새  시스키노우 , 200년 만에 땅속에서 흔적이 드러나다

▲ 19세기 러시아인들이 직접 그린 요새 지도

이번 성과는 한때 알래스카에 우뚝 서 있던 목조 요새의 흔적을 밝혀낸 것으로, 연구 결과는 2021년 1월 25일 국제 고고학 저널 안티쿼티(Antiquity)에 게재되었습니다.

알래스카 식민지화를 둘러싼 격전

1799년 러시아는 모피 무역 개발을 목적으로 알래스카 장악을 위해 소규모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 원주민인 틀링깃족(Tlingit)은 1802년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러시아인의 재침입에 대비해 틀링깃족은 2년에 걸쳐 사다리꼴 형태의 목조 요새 ‘시스키노우(Shiskinoow)’를 세웠고, 영국과 미국 상인들에게서 구한 소총·대포·화약으로 무장했습니다”라고 연구진은 설명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러시아 정착민들은 알류트족의 지원을 받아 다시 알래스카에 상륙했고, 오늘날 시트카(Sitka)로 불리는 지역에서 틀링깃족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습니다. 지상 공격이 좌절되자 러시아 측은 함포 사격의 엄호 아래 철수를 선택합니다.

“틀링깃족의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화약이 바닥나자 틀링깃족은 어둠을 틈타 전술적으로 후퇴했고 요새를 버렸습니다. 러시아와 알류트 연합군은 버려진 요새를 완전히 불태워 없애버렸지만, 그 전에 정밀한 지도를 남겨두었습니다”라고 연구는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이 요새의 정확한 위치는 한 세기 가까이 연구자들을 괴롭히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역사 기록과 일치하는 흔적들

연구진은 시스키노우의 윤곽을 추적하기 위해 땅을 파지 않고도 지하를 살필 수 있는 두 가지 비침습 지구물리 탐사 기술, 즉 전자기 유도법과 지하레이더(GPR, Ground-Penetrating Radar)를 결합해 활용했습니다. 특히 지하레이더는 지하 여러 깊이의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레이더와 같은 원리입니다. 장비가 땅속 여러 깊이(50cm, 100cm, 150cm 등)로 전기 신호를 보내고, 그 신호가 되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계산합니다. 땅속에 벽체, 퇴적층의 변화, 얼음 같은 이질적인 것이 존재하면 신호가 같은 속도로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상 반응(anomaly)’으로 감지하게 됩니다”라고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연구원이자 알래스카 주재 프랑스 고고학 탐사단 단장인 얀 악셀 고메스 쿠틀리(Yan Axel Gomez Coutouly)가 프랑스 과학매체 사이앙스 에 아브니르(Sciences et Avenir)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또한 “전자기 유도법은 자성 이상만을 감지합니다. 예컨대 화덕처럼 불에 탄 구조물이나 금속 물체가 그렇습니다. 다만 지하레이더와 달리 자력 탐사는 이상 물체의 깊이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두 가지 장비는 그 결과 “형태와 규모 면에서 요새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정확히 부합하는 패턴”을 밝혀냈다고 연구진은 강조했습니다. 특히 지하레이더는 구조물의 전체적인 배치를 복원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러시아 정착민에게 불탄 알래스카의 목조 요새  시스키노우 , 200년 만에 땅속에서 흔적이 드러나다

▲ 두 탐사 방식 모두 동일한 위치에서 비슷한 이상 패턴을 감지했으며, 이는 요새의 역사적 스케치와 놀랄 만큼 흡사합니다. 출처: Antiquity / T. Urban

아울러 연구진은 자력 탐사를 통해 현장에서 다수의 “금속성 이상 반응”을 확인했으며, 그중 일부는 포탄 등 전투 당시의 유물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시스키노우는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완전히 점령하기 전 마지막으로 무너진 물리적 방어선이었습니다. 결국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이 7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