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멕시코주의 용암 동굴(라바 튜브)을 탐사하던 지구과학자들이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약 1,500년 전, 조상 푸에블로인들은 극심한 가뭄을 견디기 위해 지하 깊은 곳의 터널로 내려가 그 안에 보존된 고대 얼음을 채취한 뒤, 이를 녹여 식수로 활용했던 것이다.

연구진이 분석한 얼음 일부. 그 안에서 숯 성분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인간이 얼음을 직접 활용했다는 결정적 증거다.
저주받은 땅, 엘 말파이스
미국 뉴멕시코주 서부에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척박하고 험준한 땅이 펼쳐져 있다.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곳을 '엘 말파이스(El Malpais)', 즉 '저주받은 땅'이라 불렀다. 한낮에는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짓누르고, 겨울에는 눈덩이에 덮이는 이곳은 인간 정착지로서 결코 매력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복잡한 사회 구조를 갖춘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들은 일만여 년 전부터 이 불모지에 뿌리내렸고, 생존을 위해 놀라운 지혜와 창의성을 발휘해 왔다. 특히 여러 푸에블로 부족들은 나무와 진흙으로 쌓아 올린 다층 구조의 독특한 주거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남플로리다대학교(USF)가 주도하는 지질학자·고고학자·고기후학자로 구성된 국제 공동 연구팀은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극심한 가뭄 시기를 어떻게 버텨냈는지, 그 비밀이 지하 깊은 곳의 용암 터널, 이른바 '라바 튜브(lava tube)'에 숨어 있음을 규명했다. 연구 결과는 2020년 11월 18일자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물
연구팀은 USF 지구과학과 보그단 오나크(Bogdan Onac) 교수의 지휘 아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엘 말파이스 국립기념물 안의 얼음으로 가득 찬 용암 동굴을 탐사했다. 그 결과, 조상 푸에블로인들(Ancestral Puebloans)이 최소한 기원후 150년부터 900년 사이에 이 터널 깊숙이 들어가 내부에 보존된 얼음을 채취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얼음을 녹인 물은 적어도 다섯 차례에 걸친 파괴적인 가뭄 속에서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수자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가뭄의 흔적은 이 지질 구조물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연구팀의 모습. '29번 동굴(Cave 29)'이라 불리는 용암 터널 입구에서 촬영됐다. 출처: University of South Florida
이번 탐사는 거의 65km에 달하는 고대 용암류 지대 한가운데 위치한 단일 용암 동굴에 집중되었다. 이 동굴은 깊이 약 14m, 조사된 구간의 길이는 171m에 이른다. 자연적인 함정과도 같은 이런 터널 상당수에는 대규모 얼음 퇴적물이 저장되어 있는데, 약 2천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면적을 자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이 귀중한 유산은 해마다 줄어드는 몇 줄기 물방울에 불과한 아주 위태로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아남다
연구진은 동굴 내부에서 탄화된 물질을 확인했다. 이는 조상 푸에블로인들이 작은 불을 피워 얼음을 녹여 마실 물로 만들었으며, 어쩌면 종교 의식에도 활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처음에는 고기후 연구를 위한 빙핵 채취를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했던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낸 것은 바로 숯과 재 퇴적물, 그리고 도자기 파편이었다.
보그단 오나크 교수는 "수많은 용암 동굴에 들어가 봤지만, 동굴 가장 깊은 곳 바닥에 쌓인 숯의 양 때문에 이곳은 특별했다"며 "흥미롭긴 했지만, 빙핵에서 숯과 그을음을 발견하고 나서야 얼음이 물 자원으로 활용되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재 사이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 출처: University of South Florida
과학자들은 이번 탐사를 통해 뜻밖의 확인을 얻었다. 그동안 고고학계에서는 물증 부족으로 입증하지 못했던 '조상 푸에블로인들의 용암 동굴 내 취수 활동'이 실제로 존재했음이 물질적 증거와 함께 확인된 것이다.
연구진은 기온이 온화했던 해에는 동굴 입구 근처의 계절적 얼음이 녹으면서 조상 푸에블로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얕은 물웅덩이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분석한다. 반면 더 따뜻하고 건조한 시기에는 표면의 얼음이 사라졌고, 이때 부족민들은 소중한 물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땅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