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2일, 프랑스 낭트(Nantes)의 브르타뉴 공작 성에 자리한 낭트 역사박물관은 13세기 몽골 제국과 위대한 정복자 징기스칸을 조명하는 전시 ‘천자와 초원의 아들들(Sons of Heaven and the Steppes)’의 개막을 2024년 10월로 연기했습니다. 원래 이 전시는 내몽골 자치구의 수도 후허하오터(Hohhot) 박물관이 대여하기로 한 225점의 유물을 통해 몽골 제국의 탄생과 징기스칸의 업적을 선보일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 교류를 관장하는 공식 기구인 베이징의 국가문물국이 개입해 전시 내용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징기스칸’, ‘몽골’, ‘제국’이라는 용어의 삭제를 요청했고, 텍스트와 지도 검수를 통한 ‘전시 제작 과정 통제’까지 긴급히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몽골 영역은 ‘중국 북방의 초원’으로 표기되어야 했을 터입니다. 낭트 박물관 측은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사유를 밝힌 뒤 전시 연기를 결정했습니다. 지정학사(地歷史) 전문가인 크리스티앙 그라탈루(Christian Grataloup) 파리 시테대 명예교수에게 이 사건의 의미를 들어봤습니다.

타이베이 고궁박물원 소장, 14세기 징기스칸 초상화
“몽골은 중국이 지우고 싶은 기억”
— 중국이 왜 ‘징기스칸’, ‘몽골’, ‘제국’ 같은 용어의 삭제를 요구했다고 보십니까?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몽골인은 중국인에게 매우 불쾌한 기억입니다. 침략과 파괴, 그리고 무엇보다 굴복의 기억이죠. 이번 사건은 프랑스에서 말하는 ‘국민 서사’, 즉 한 국가가 스스로에 대해 만들어 가는 공식 서술과 맞닿아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황제의 서사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는 나라를 찬양하는 관점에서 집필되며 철저히 통제됩니다. 낭트의 이번 사건이 드러낸 것은, 국내에서 이뤄지던 검열이 점차 국외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고통스럽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은 지워져야 합니다. 13세기가 바로 그런 시기입니다.

2024년으로 연기된 전시 포스터 “징기스칸과 몽골 제국의 탄생” ©낭트 역사박물관
13세기, 분열된 중국을 노린 초원의 군사 강국
—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당시 중국은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가장 잘 알려진 세력은 남쪽의 송나라였습니다. 나라가 분열될 때마다 권력은 북방 초원과 그 주민들, 즉 잠재적으로 위험한 유목 목축 집단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점차 미래의 징기스칸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은 민족집단을 축으로, 주변부에 강력한 군사 세력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내분을 틈타 ‘텐트에 사는 민족들’을 통합했습니다. 테무진이 대쿠릴타이(Kurultay), 즉 부족 연합 회합에서 ‘군장들의 우두머리’로 추대되며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보편 제국의 서막이 열린 것입니다.
중국을 지배한 비(非)한족 왕조, 원나라
— 그럼에도 몽골인은 중국사에서 큰 역할을 했지 않았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의도적으로 축소되고 있습니다. 아들들과 손주들에 둘러싸인 징기스칸은 새로운 왕조 창건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중국 정복에 나섰고, 1227년 그가 사망한 뒤 손자 쿠빌라이 칸이 송 제국을 멸망시키며 정복을 완성했습니다. 이후 1271년 카발룩(Cambaluc), 훗날의 베이징에 수도를 정하고 원(Yuan) 왕조를 세웠습니다. 비(非)중인(漢人) 왕조, 곧 몽골인의 왕조였습니다.

징기스칸을 묘사한 삽화 ©위키미디어
“이제 국경 밖까지 검열을 확장하는 중국”
— 중국 당국이 외국 기관에 이런 요구를 한 것은 처음입니까?
프랑스 같은 강대국에 대해 이런 요구가 들려온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매우 특수한 정치적 맥락과 겹칩니다. 내몽골에서 초등학교 교육 언어를 표준 중국어(만다린)로 바꾸는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진 시기와 겹친다는 점입니다. 그전까지 중등교육 언어로만 쓰이던 중국어가 초등교육까지 강제된 것이죠. 지금 중국은 비(非)한(漢) 언어를 근절하고 몽골인이 중국어로 읽고 쓰고 말하도록 강요하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토 안에서는 어디서나 통제를 강화하는 중국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국경이 없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국외에서 일어나는 일도 통제할 수 없을 이유가 없다는 태도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전 세계에서 느껴집니다. 10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1980~2010년 사이 중국 정부가 놀라울 만큼 유능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호의를 낭비하고 있습니다.
— ‘제국’이라는 단어마저 지우라고 요구하는데, 그 행위 자체가 진짜 제국주의 아니겠습니까?
아마 ‘몽골 제국’이라는 표현이 쓰이면 안 된다는 뜻일 겁니다. 중국이 몽골 제국에 속해 있었다는 생각, 다시 말해 정복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 권력의 눈에는 문자 그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몽골의 원나라는 약 1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3000년간 이어진 초원의 그림자
— 중국에 아직도 주변부 민족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까?
몽골인은 3000년간 끊임없이 국경을 압박해 온 초원의 민족들, 이른바 ‘오랑캐’를 상징합니다. 심지어 최초의 황제 진시황제(기원전 259~210년)가 등장하기 전부터 중국에서 권력이 집중된 것도, 이 외부 세력의 위협에 맞서 나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18세기 러시아가 초원을 평정하고 나서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몽골인은 중국인에게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으며, 그들의 지정학적 사유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입니다.
— 서구의 인식과는 사뭇 다른 시각이네요.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징기스칸은 지구상 최대의 지정학적 제국을 이끈 매혹적인 인물입니다. 우리에게 이 시기는 마르코 폴로의 방랑, 대여행의 확산, 활발한 상업 교류의 시대입니다. 특히 광대한 몽골 정복 이후 상대적 평화가 이어진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가 그렇죠. 반면 중국의 정서 속에서 징기스칸을 높이 평가하는 전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
베르나데트 아르노(Bernadette Arnaud)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