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바이킹 전사들에게서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극도로 잔혹한 고문 의식 '블러드 이글(Blood Eagle)'은 그 역사적 진위 여부가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역사학자와 의료 전문가들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 의식이 해부학적으로 '예외적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의 한 장면. 호주 출신 배우 트래비스 피멜(Travis Fimmel)이 연기한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 Lodbrok) 캐릭터.
용맹한 전사, 뛰어난 항해사, 무한한 탐험가, 끝없는 약탈자, 신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았던 영적 존재… 사라진 지 천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바이킹은 역사와 대중의 상상 속에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후기 철기 시대에 등장한 스칸디나비아 문명인 바이킹을 소재로 한 소설, 비디오 게임, 드라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상당수는 클리셰를 십분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중문화 작품 가운데 캐나다-아일랜드 합작 드라마 바이킹스는 8~9세기경 스웨덴과 덴마크를 다스렸다고 전해지는 반전설적 인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를 중심으로, 적어도 초반부에서는 정교하게 짜인 스토리를 펼쳐낸다.
바이킹스는 가족과 함께 보기 어려운 작품답게, 당시 '노르만(Normans)', 즉 어원적으로 '북방의 사람들'이라 불리던 이들이 여러 간접 자료에 따르면 가장 명망 높은 적들을 어떻게 응징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바로 '블러드 이글'이라 불리는 고문이었다. 선혈창창한 내용이니 주의하길 바란다. 이 의식은 산 채로 움직임을 봉쇄당한 희생자의 등을 가르고, 척추뼈에서 늑골을 하나씩 분리해 낸 뒤, 상처를 통해 폐를 꺼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벌려진 늑골 양옆에 펼쳐진 폐가 마지막으로 파닥이는 모습은 마치 맹금류의 날갯짓을 연상시켰다고 한다.
기록은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영화 같은 장면이라 할지라도, 이런 고문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바이킹이 특정 시기에 이 의식을 행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현재까지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고고학적 증거란 구체적으로 등 쪽 늑골이 찢겨 나간 최소한의 흔적(a minima)을 지닌 골격의 발굴을 의미한다. 결국 블러드 이글 의식은 복잡한 시가(詩歌)를 포함한 중세 문헌을 통해서만 전해지며, 그 신뢰성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이견이 있다.

늑골의 분리 또는 절단 결과를 보여주는 흉곽 모식도. 왼쪽은 늑골 각 부근을 골절시키면 잔여 늑골 조각(화살표 표시)이 폐 접근을 가로막아 개구부를 통해 폐를 꺼내기 어려워짐을 보여준다. 오른쪽은 늑골을 흉추에서 직접 분리할 수 있다면 흉벽을 열어 폐에 더 잘 접근할 수 있었을 경우를 나타낸다. 실제로는 불가능했지만, 이렇게 되었더라면 유명한 '날개'를 만들기 위해 폐에 더 좋은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출처: 3D4Medical Complete Anatomy 소프트웨어 / 루크 존 머피(Luke John Murphy)-아이슬란드 대학교
이에 한 연구팀은 주제를 '반대편'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바이킹이 실제로 희생자의 등을 가르고 늑골과 폐를 적출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면, 애초에 그러한 의식이 해부학적으로 가능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아이슬란드 대학교에서 기독교 이전 유럽 종교를 전공하는 고고학자 루크 존 머피(Luke John Murphy)와 그의 팀은 이렇게 설명했다. "기존 연구들은 블러드 이글에 대한 중세 기술의 세부 사항과 신뢰성에 초점을 맞춰 의식의 역사성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우리는 그와 달리, 어떤 '블러드 이글'이든 수행되어야 했던 해부학적·사회문화적 한계를 고려했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미국 중세학회(Medieval Academy of America)를 대신해 시카고 대학교가 발행하는 학술지 스페큘럼(Speculum) 2022년 1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의식
의과학사 학자와 의학·신경과학 교수를 포함한 연구진은 이번에 제기된 질문에 단호한 답을 내놓았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몇 가지 세부 사항을 제외하면 바이킹은 충분히 이러한 의식을 집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The Conversation에 게재한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현대의 해부학·생리학 지식과 중세 기록 9건에 대한 면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블러드 이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 절차 자체는 어려웠지만, 당시의 기술로도 수행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위, 스웨덴 고틀란드섬에 있는 스토라 함마르(Stora Hammars) 석판 중 하나. 위에서 두 번째 줄에 블러드 이글 의식의 집행 장면이 묘사되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래, 루크 존 머피 팀의 해석 도해. 출처: Wikimedia Commons(위) / 루크 존 머피-아이슬란드 대학교
전문가들은 특정 유형의 바이킹 창 끝이 흉곽을 뒤쪽에서 빠르게 '열어젖히는' 임시 도구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한 무기는 스웨덴 고틀란드섬에서 발견된 석비에 새겨져 있으며, 블러드 이글을 통합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에 등장합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 설령 의식이 정성껏 집행되었다 하더라도 희생자는 등이 절개된 직후 매우 빠르게 사망했을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늑골을 '날개'로 만들고 그 사이에 폐를 놓으려는 시도는 시신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갯짓'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라고 연구진은 확언했다.
잃어버린 명예의 회복
그럼에도 저자들은 바이킹이 의식적 맥락에서 시신을 훼손하는 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며, 물론 그런 관행은 드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바이킹 시대 전사 엘리트에게 전혀 이질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인간과 동물의 시신을 처형 과정에서조차 의식적으로 공개 전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상기시켰다. 연구팀은 "역사상 실재했던 블러드 이글은 의식 피해자의 손에 친족 남성이 '불운한 죽음'을 맞이한 뒤, 의식 주관자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통념과는 달리, 우리는 블러드 이글이 바이킹 시대에 충분히 실제로 행해졌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육체적으로 가능했고, 처형과 시신 처리에 관한 더 넓은 사회적 관습과 부합했으며, 명예와 위신을 과시하려는 문화적 집착을 반영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 연구팀의 성과일 뿐이지만, 오랫동안 논쟁이 계속되어 온 질문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