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동안 콜롬비아 원주민들은 과바레(Guaviare) 정글 깊숙한 곳에 자신들의 신화를 그려 왔습니다. 수십 년간의 내전으로 인해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이 귀중한 유산이 이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인류학·역사연구소(ICANH)의 역사학자 안드레스 로페스(Andrés López)가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 공원에서 길이 100미터, 높이 30미터가 넘는 암벽화 앞에 서 있습니다.
아마존의 짙은 습기가 감도는 숲속, 가파른 오솔길 끝에서 거대한 벽면이 나타납니다. 아나콘다, 재규어, 거북이 등… 수천 년 동안 콜롬비아 원주민들은 이곳에 자신들의 신화를 새겨 왔습니다. 수십 년간의 전쟁으로 오랫동안 잠겨 있던 보물입니다.
과바레 정글 한가운데, 무장단체들이 여전히 지배권을 다투는 전략적 요충지에는 치리비케테와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 국립공원의 '테푸이(tepuy)'가 우뚝 서 있습니다. 제3기에 형성된 이 산들은 오랜 풍화를 거치며 마치 거대한 북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면적만 한 남부 콜롬비아의 에메랄드빛 정글 바다에 흩어져 있는 이 산들에는 수백 점의 암벽화가 새겨져 있으며, 아마존 정착 역사를 이해하는 데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과바레에서 작업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지난 50년간 이곳은 전쟁의 진원지였으니까요. 20세기 초에 탐사 활동이 있었지만, 상황 때문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콜롬비아 인류학·역사연구소(ICANH) 사무총장 에르네스토 몬테네그로(Ernesto Montenegro)

세라니아 데 치리비케테 국립공원의 항공 사진, 2018년 6월 7일 콜롬비아 © AFP - GUILLERMO LEGARIA
2016년 FARC 게릴라와의 평화협정 덕분에 연구자들은 다시 테푸이를 찾아가, 최소 1만2천 년 전부터 아마존 민족들이 바위에 새긴 의식용 암각화를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려지고 있는 이 그림들은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입니다.
영혼들의 영역
하지만 모든 원주민이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현자만이 영혼들이 가득한 이 성스러운 장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은 생각으로도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라고 ICANH 역사학자 안드레스 로페스는 말하며 진흙탕을 걸어 올라갑니다. 목적지는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에 있는 길이 100미터, 높이 30미터가 넘는 암벽화로, 라우달(Raudal) 마을에서 4륜구동 차량으로 한 시간 거리입니다.

프랑스 외무부 소속 IFEA 인류학자 셀린 발라도(Céline Valadeau)가 2018년 6월 8일 콜롬비아 과바레 정글에서 암벽화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 AFP - GUILLERMO LEGARIA
코카 재배와 코카인 제조가 난무했던 산호세 델 과바레(San José del Guaviare) 지역의 이 마을은 콜롬비아 혁명군(FARC)과 경찰 간의 분계선이었습니다.
과바레 강, 즉 기관총을 장착한 군용 정기선이 아직 드나드는 오리노코 강의 격류 지류를 배로 한 시간 이동하면 말뚝 위에 지어진 이 작은 마을이 나타납니다. 2000년대까지 극우 준군사조직에 포위되어 있던 이곳은 무장해제를 거부한 구게릴라 이탈 세력인 '프리메르 프론트'의 거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다시 과바레로 돌아옵니다"라고 몬테네그로는 기뻐합니다. 더 멀리 있는 세로 아술(Cerro Azul)의 다른 벽화들을 소개하며, 고고학자들이 "평화 프로세스의 혜택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기 때문입니다. FARC 이탈 세력은 탐사대를 검문하고 활동 반경을 정해 주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에는 반대하지 않는 듯합니다.
발견을 기다리는 유적들
5월 말, ICANH의 주도로 콜롬비아 문화부는 세라니아 데 라 린도사를 '고고학 보호구역'으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ICANH는 또한 프랑스 안데스연구소(IFEA)와 협력하여 이 유적에 대한 첫 국제 학술 조사도 주관했습니다.

세라니아 라 린도사 공원의 암벽화, 2018년 6월 8일 콜롬비아 과바레 정글 © AFP - GUILLERMO LEGARIA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연구를 해내기를 바랍니다. 아직 발견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랑스 외무부 소속 IFEA 인류학자 셀린 발라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적 외에도 "사진 기록은 존재하지만 당시 GPS가 없어 위치를 찾지 못한 곳"이 있으며, 지도 측량도 부정확하다고 그녀는 덧붙입니다. 눈앞에는 춤추는 사람, 사냥꾼, 심지어 연인의 모습까지 담긴 그림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망간이 풍부한 광물 혼합물로 만들어진 이 안료는 산화되면서 특유의 주황색을 띠게 됩니다. 식물성 성분이 없어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탄소14)으로도 연대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옛 화가들이 벽면 아래에서 피워 올린 불의 흔적뿐입니다. 한편, 비행기로 그 웅장함을 감상해도 노련한 전문가들을 경탄케 하는 치리비케테에서는 1980~90년대, 즉 전쟁이 가장 극심해지기 직전에 처음으로 고고학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 ICANH는 채굴과 석유 개발의 위협으로부터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습니다. 결과는 6월 말에 발표될 예정입니다. 무려 7만 개의 암각화를 품은 이 공원은 콜롬비아의 9번째 세계유산이 되는 동시에, 지구상에서 최초로 등재되는 선콜럼버스 시대의 걸작이 될 수 있습니다. 6월 17일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몬테네그로는 이 보물들이 보존되기를 희망합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처럼 방대한 문화적 부를 지닌 영토를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