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타림 분지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미라에 대한 게놈 연구가 이 놀라운 천년 유물의 기원을 규명했습니다. 수십 년간 학계와 대중의 이목을 끌어온 거대한 미스터리에 마침내 종지부가 찍힌 것입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샤오허 묘지의 항공 사진. 유명한 '타림 분지 미라'들이 배 모양 관 속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인도·유럽계' 인종의 외모로 유명한 이 미라들은 중국 서부 타클라마칸 사막 — "생환할 수 없는 사막"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 — 의 모래 속에서 발굴되어 수십 년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습니다. 코가 곧고 눈매가 뚜렷하며 머리카락이 옅은 '코카서스계' 특징과 격자무늬로 장식된 펠트 및 직조 양모 의상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이 고대 문화를 유럽 계통의 중앙아시아 문화로 연관 짓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구 중국 튀르키스탄) 남쪽 타림 분지에 이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려는 수많은 이론이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10월 27일 국제 공동연구팀이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가 이 미스터리의 해답을 제시했습니다. 이 연구는 혹독한 사막 환경 덕분에 수천 년간 자연적으로 보존된 수수께끼의 미라들의 유전적 기원을 밝혀냈습니다. 한때 서방에서 기원했다고 여겨졌던 이 청동기 시대 주민들은 결국 현지 출신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을 "유전적으로는 고립되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코스모폴리탄(세계주의적)인 집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펠트 모자를 쓴 이 4000년 된 장발의 젊은 여성은 중국 신장 타림 분지의 샤오허 묘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출처: 리원잉(Wenying Li), 신장 문물 고고학 연구소
그동안 제기됐던 두 가지 기원설
1934년 스웨덴 탐험가 폴케 베르크만(Folke Bergmann)이 보고하고, 2003년에야 신장 고고학 연구소의 이드리스 압두루술(Idriss Abdurussul)이 재발견한 샤오허 묘지 — 일명 '천 개의 미라의 땅' — 에서 발굴된 이 유골들의 기원에 대해 그동안 어떤 이론들이 있었을까요? 연구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타림 분지 미라의 외모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이들이 러시아 남부 흑해 초원의 고도로 이동적이었던 청동기 시대 사회, 야므나야(Yamnaya) 목축민의 후손일 것이라 추측했고, 다른 이들은 그 기원을 중앙아시아 사막 오아시스 문화, 특히 박트리아-마르기아나 고고학 복합체(BMAC)"(옥수스 문명 — 역주)", 즉 이란 고원 최초의 농부들과 유전적으로 연결된 집단에서 찾았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지린대학교(중국),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독일), 서울대학교(한국), 하버드대학교(미국) 소속 연구자들은 기원전 2100년~1700년으로 추정되는 타림 분지 미라 13구와, 더 북쪽 인접 지역인 준가르 분지에서 나온 기원전 3000년~2800년경 미라 5구의 게놈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연구진은 놀랍게도 타림 분지 미라들이 플라이스토세에 널리 번성하다가 약 1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며 대부분 사라진 고대 집단의 직계 후손임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고대 북유라시아인(Ancient North Eurasians, ANE)'으로 불리는 집단으로, 현재 인구에서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시베리아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알려진 범위 내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입니다.
뿐만 아니라 샤오허 유적의 타림 분지 개체들의 치석에서 강한 젖 단백질 흔적이 검출되어, 이들이 낙농 목축 문화에 속했음을 시사했습니다.
미스터리 속에 잠들어 있던 '유전적 고립 집단'
논문 저자들에 따르면 타림 분지 인구는 사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전적 고립 집단(genetic isolate)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중국 서부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착하기 전 극심한 유전적 병목(bottleneck)을 겪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유전적으로는 고립되어 있었지만, 이 집단은 이웃 민족들의 농목축(agropastoral) 방식을 받아들여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를 따라 정착하고 번영할 수 있었습니다.
"고고유전학자들은 내륙 유라시아의 유전사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홀로세(약 1만 10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학적 시대) ANE 인구를 오랫동안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서울대학교의 정충원 교수가 말했습니다.
[박스] 샤오허의 모래 미라들
타림 분지의 유명한 '모래 미라'들이 발견된 현재의 신장 지역은 1884년 청나라(1644~1911) 시대에 '새로운 변경(新疆)'이라 명명되었으며, 동튀르키스탄 공화국으로서의 짧은 독립기를 거친 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에 편입되었습니다. 몽골에서 11세기에 이주해 온 튀르크계 민족인 위구르인이 주로 거주하는 이 지역은 중국, 인도, 페르시아 등 거대한 정착 제국들이 교차하는 길목에 항상 자리해 왔습니다. 서기 초기에는 여러 실크로드가 이 지역의 다양한 통로를 지나갔고,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이름 없는 또 다른 길들이 오갔습니다. 외국인에게 오랫동안 폐쇄되었던 이 지역에서 우리는 1990년대 이후에야 그 흔적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1898년부터 1934년 사이 스웨덴의 탐험가이자 학자인 스벤 헤딘(Sven Hedin)과 폴케 베르크만은 신장 중부 지역 모래 아래에 고고학 유적이 존재한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샤오허의 놀라운 네크로폴리스가 발견된 것은 2003년이 되어서였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토템처럼 세워진 140개의 기둥이 특징인 이 유적을 찾아낸 이는 바로 새로운 유전 연구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이드리스 압두루술이었습니다. 죽은 자의 성별에 따라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해진 기둥이 세워진 이 무덤들에서는 수백 구의 미라가 발굴되었습니다.
포플러 나무로 만든 배 모양 관은 동물 가죽으로 덮이고 타마리스크 꽃으로 장식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남녀 모두 놀랍도록 잘 보존된 상태로 안치되어 있었고, 때로는 같은 나무로 깎은 활과 화살이 함께 매장되기도 했습니다. 이 수천 년 된 유해들 중에는 무엇보다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라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4000년 된 긴 머리의 젊은 여성입니다. 펠트 모자를 쓰고 술이 달린 치마에 부츠 한 켤레를 착용한 모습이 그녀였습니다. 샤오허에서 고고학자들은 나무 조각상부터 옥 구슬로 장식된 팔찌, 밀짚 바구니에 이르기까지 농부와 목동의 문명을 증언하는 수많은 유물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중국 신장에 해당하는 타림 분지 한가운데 위치한 샤오허 묘지, 배 모양 무덤과 기둥들. 출처: Nature

샤오허 묘지의 배 모양 관 하나와 함께 안치된 미라의 측면 모습. 출처: 리원잉(Wenying Li), 신장 문물 고고학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