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1500년 전 바이에른 게르만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상아빗과 아프리카 도기

독일 바이에른주 슈바벤 지방에서 고고학자들이 게르만 상층부 인물의 무덤 두 곳을 발굴하며 정교하게 조각된 상아빗과 아프리카 시길라타 도기 그릇이라는 희귀하고 사치스러운 유물을 확인했습니다.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인 이 부장품들은 로마 제국의 해체 이후에도 알프스와 지중해 너머 먼 지역들과의 교류가 지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1500년 전 바이에른 게르만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상아빗과 아프리카 도기

2021년 바이에른주 데닝엔(Deiningen)에서 발굴된 6세기 무덤에서 나온 조각 상아빗의 뒷면

2021년 여름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 데닝엔에서 진행된 사전 발굴조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바이에른 기념물 보존청(BLfD)의 고고학자들은 1930년대에 이미 이 유적지에서 첫 발견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무덤의 존재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굴된 무덤들이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은 놀라운 물건들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1500년 전 이 지역에 조각 상아빗과 튀니지산 도기 그릇처럼 희귀하고 귀중한 물건들이 어떻게 도달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물건들은 누구와 함께 묻혔을까요? 고고학자들은 가설을 제시할 수 있을 뿐, 발견이 던진 모든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기 중세 시대 두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최근 몇 달간 슈바벤 북부 뇌르틀링거 리스(Nördlinger Ries)에 위치한 데닝엔 마을에서 총 75기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그중 두 무덤이 특히 고고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는데, 6세기에 조성되었으며 풍부하게 부장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무덤은 40~50세 남성의 것으로, 장검·창·방패·전투도끼 등 무기류와 함께 청동 대야, 그리고 가위와 상아빗이 들어 있던 가방의 흔적이 나왔습니다. 발치에서 박차와 굴레 잔여물이 확인되어, 그가 인근 구덩이에서 발견된 말의 기수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두 번째 무덤에는 30~40세 여성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으며, 보석류와 음식 부장품(특히 달걀), 그리고 베틀에서 실을 걷어 올리는 데 쓰이는 직기용 칼(위빙 소드)이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유해 왼쪽에는 다른 용기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그릇 형태의 토기가 있었는데, 정교한 솜씨가 말해주듯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튀니지에 해당하는 지역의 공방에서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이 도기는 이른바 '아프리카 적색 광택 도기(African red slip)'로, 식탁용 그릇으로 제작된 얇은 붉은 유약을 입힌 도자기입니다. 로마 시대 지중해권에서 널리 유통되던 종류로, 데닝엔에서 아주 좋은 상태로 발견된 이 그릇은 알프스 이북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입니다. 상아빗 역시 6세기에는 극히 드문 물건이기에 마찬가지로 처음 나온 것입니다.

1500년 전 바이에른 게르만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상아빗과 아프리카 도기

데닝엔 유적의 여성 무덤. © Archäologiebüro Dr. Woidich / BLfD

예술품 수준의 상아빗

발견된 빗은 여러모로 귀중합니다. 일상용품이자 예술 작품이기에 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자들은 보도자료에서 초기 중세 시대 무덤에서 빗이 부장품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번 빗처럼 크기가 크고 격식과 품질을 갖춘 사례는 없습니다. 여러 조각으로 발견되어 복원을 마친 상아빗은 길이 14cm에 달하며, 양면에 정교한 조각으로 사냥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연구자들은 포식자를 피해 도약하는 가젤의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빗에는 통상 성경이나 기독교적 모티프가 장식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이국적 동물, 어쩌면 아프리카 동물이 표현된 사례는 처음입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는 이른바 전례용 빗의 대표 사례가 소장되어 있는데, 카롤링거 시대의 것으로 '사자를 찢는 삼손' 장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외모를 가꾼 알레만니 기마 전사

빗의 희귀성만으로도 소유자가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빗은 대개 여성 무덤에서 발견되지만 남성 무덤에서도 출토되기는 하므로, 남성 무덤에서 나왔다는 점은 더욱 의미심장합니다. 이 남성은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화장용 가방에 들어 있던 가위와 빗으로 이를 관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500년 전에 묻힌 이 전사는 외모를 가꾸었는데, 적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해서였을 테지만 동시에 자신의 지위와 문명화된 민족의 일원임을 드러내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1500년 전 바이에른 게르만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상아빗과 아프리카 도기

데닝엔 유적의 남성 무덤. © Archäologiebüro Dr. Woidich / BLfD

룬 문자로 남긴 서명?

시길라타 도기 그릇 역시 그려진 문양 때문에 많은 의문을 낳습니다. 이름이 시사하듯 라틴어 sigillum(인장)에서 유래한 시길라타 도기에는 흔히 도장이 찍히는데, 그릇 바닥에 보이는 십자가가 제작 단계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용기 가장자리에 새겨진 글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단순한 낙서인가, 하나 이상의 서명인가, 아니면 장식적 혹은 주술적인 상징일까요? 6세기 프랑크 왕국 영역에 속했던 이 지역에서는 로마 지배 이후에도 라틴 문자로 글을 쓰는 관습이 이어졌지만, 이름이나 소유자를 표기할 때 룬 문자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아직 해독에 성공하지 못한 채, 이 글자 시도가 룬 문자에 기반한 것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500년 전 바이에른 게르만 귀족 무덤에서 발견된 이국적 유물, 상아빗과 아프리카 도기

각인이 새겨진 도기 그릇. © BLfD

선물인가, 전리품인가

BLfD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이 두 물건은 당시 '진정한 사치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때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먼 지역들 사이의 접촉이 제국 해체 이후에도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6세기 뇌르틀링거 리스 지역은 로마 제국의 라에티아(Raetia) 속주였던 곳으로, 알레만니족이 거주했지만 클로비스가 이 게르만 부족 연합을 두 번째로 격파한 뒤 프랑크의 지배 아래 들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들은 어떻게 이 이국적인 물건들을 손에 넣었을까요? 그들을 저명한 봉신으로 두었던 군주가 하사했을 수도 있고, 공물 또는 전쟁 원정에서 거둔 전리품 일부로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알레만니족이 현재 이탈리아 영토를 두고 동고트족과 동로마 제국 사이의 분쟁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로 통하는 직접 교역로

슈바벤에서는 19세기부터 알레만니 유적이 발굴되어 왔으며, 데닝엔에서 조금 남쪽에 위치한 노르덴도르프(Nordendorf) 지역이 그 중심지입니다. 1844년 철도 건설 과정에서 6세기 알레만니 마을의 흔적과, 프랑크족·알레만니족·롬바르드족의 거주를 보여주는 약 450기의 무덤으로 이루어진 묘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최근인 2019년에는 데닝엔의 무덤들과 유사한 특징을 지닌 합장묘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희귀한 기마장(騎馬葬)과 함께, 다수의 무기와 마구, 그리고 콥트식 도자기(아마도 이집트, 소아시아 등 지중해권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로 이루어진 식기가 부장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무덤들은 이 지역에 높은 지위의 집단이 존재하여 매우 먼 지역들과 교류를 유지했으며, 무역을 통해서든 권력에 대한 보상과 인정의 형태로든 명망 있는 물건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참고로 노르덴도르프와 데닝엔은 한때 로마 라에티아의 수도였던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북쪽으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이 중요한 상업 도시는 알프스를 가로질러 다뉴브 강변의 리메스(limes)까지 이어지는 전략적 축인 비아 클라우디아 아우구스타(Via Claudia Augusta)를 통해 이탈리아 포 평야와 직접 연결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