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간 올리비에(Morgane Ollivier)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 소속 고생물유전체학자로, 침묵해 있던 흙속의 DNA에 목소리를 되찾아 주고자 한다.
퇴적층에 남아 있는 인간 DNA의 잔여물과 함께 멸종된 동·식물 종의 흔적을 추적하는 것은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길이다.
모로코 이프란(Ifrane) 주에 위치한 이페(Iffer) 호수 깊은 곳에서 채취한 퇴적물 코어에는 진흙 샘플 외에 특별한 것이 담겨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리옹 대학교 장프랑수아 베르제(Jean-François Berger) 교수 연구팀이 수심 6미터에서 채취한 이 실트 원통형 시료 안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 렌 제1대학교(Université de Rennes 1) 강사이자 에코비오 연구소(Ecobio, CNRS UMR 6553) 소속인 모르간 올리비에는 그 안에서 인간 DNA의 '흔적'과 함께 멸종된 동·식물 종의 흔적까지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약속된 성과인 셈이다.
흙에서 인간 DNA를 최초로 추출하다
이 새로운 기술의 뿌리는 독일 라이프치히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Max-Planck-Institut für evolutionäre Anthropologie)의 고유전체학자 비비앙 슬론(Viviane Slon)과 생물학자 마티아스 마이어(Matthias Meyer)에게 있다. 두 사람은 크로아티아 빈디야(Vindija) 동굴의 퇴적층에서 채취한 흙에서 인간 DNA를 추출해냈다. 이후 모르간 올리비에는 이와 유사한 방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적화하며, 수천 년 전 자신들이 밟고 지나간 퇴적층 속으로 사라진 먼 조상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기술을 완성해 가고 있다.
그때까지 고고학자, 인류학자, 생물학자들은 화석화된 유기물(뼈, 머리카락, 치아, 불의 흔적, 음식물 찌꺼기 등)이나 선사시대 조상들이 남긴 돌도구 등 각종 인공물이라는 '증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분자 수준의 '지문'만으로도 고인들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중국 란저우 대학교(Lanzhou University)의 둥주 장(Dongju Zhang) 연구자는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티베트 고원 바이시야(Baishiya) 석회암 동굴 퇴적층에서 데니소바인(Denisovan)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출했음을 공개했다.

브르타뉴 모르비앙(Morbihan) 베그에르빌(Beg-er-Vil) 유적지의 심부 퇴적물 샘플링. © Morgane Ollivier
이런 방식으로 유전 물질을 분리해낼 수 있는 이유는 DNA 분자가 수천 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놀랍도록 강한 내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2003년 코펜하겐 대학교(University of Copenhagen)의 진화유전학자 에스케 윌레르스레우(Eske Willerslev)가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염기서열 분석을 수행하면서 이를 입증했다. 늑대 무리가 남긴 오줌, 호모 사피엔스나 네안데르탈인 가족이 남긴 머리카락이나 배설물까지도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르간 올리비에, 에코비오 연구소(CNRS UMR 6553) 및 렌 제1대학교 소속. ©CNRS
"한 유적지의 과거 생물 다양성을 통째로 복원한다"
"퇴적 DNA(sedimentary DNA, eDNA)라 불리는 이 방법은 잠재적으로 한 유적지의 과거 생물 다양성 전체를 복원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모르간 올리비에는 설명한다. 물질적 유물이 없어 그동안 '한 번도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으로 여겨졌던 곳에서조차 가능한 일이다. 데이터 출처의 확대는 인간이 환경에 끼친 영향에 관해 끊임없이 커지는 질문들에 뜻밖의 답을 제공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예컨대 신석기 문화 전환기, 근동(近東)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한 인류 집단이 새로운 가축화 종들을 들여왔을 때, 인간은 당시 생물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토착 동물들과는 어떤 관계였을까? 경관의 변화로 이어졌을까? 퇴적 DNA 데이터를 활용해 지식을 확장한다면 인류 이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젊은 고생물유전체학자는 확신한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은 아슬아슬할 만큼 광활한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 준다!"

피에르 스테팡(Pierre Stephan), 아네타 고르친스카(Aneta Gorczynska), 야신 무피드(Yacine Moufid)가 사르조(Sarzeau) 반도 쉬스시니오(Suscinio) 유적지, 브르타뉴 공작 저택 인근에서 퇴적물 코어 시추를 진행하는 모습. © Morgane Ollivier
실제로 모로코 이프터(Ifter) 유적지에서 얻은 첫 결과는 이미 매우 고무적이다. 모르간 올리비에는 어떤 화석 유물도 없이 코끼리, 소, 양, 작은 포유류, 그리고 수많은 식물 종의 존재를 단 몇 밀리그램의 퇴적물 분석만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그녀를 가장 뿌듯하게 만든 것은 인간의 흔적을 구분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페에서는 인간의 흔적을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현재 연구자는 무엇보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분석 방법과 DNA 서열 식별에 쓰이는 알고리즘을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기존 것보다 더 강력한 생물정보학 방법론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흙속에 존재하는 DNA 가닥을 선택적으로 포획(capture)하는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그녀는 프랑스 내 여러 지역에서 코어 시추를 반복하고 있다. 모르비앙의 패총(貝塚) 유적 베그에르빌부터 사르조 반도 쉬스시니오 지역 로파르고(Rohu-Pargo)의 이탄 습지까지가 그 대상이다. 중기적으로는 지중해 이주 경로를 추적하여, 인류 이동과 환경에 미친 지역적 영향에 대한 시간과 공간 전반의 통시적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젊은 연구자의 작업은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CNRS 연구책임자(UMR 6566 CReAAH)이자 선사학자인 그레고르 마르샹(Grégor Marchand)이 열정적으로 말한다. "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에 더해, 새로운 세대의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데이터 생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생명을 탐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