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고대 DNA 분석 연구들은 철기 시대 이탈리아 중부에서 꽃피웠던 찬란한 문명, 에트루리아 문명(기원전 10~1세기)의 기원과 그들이 남긴 유산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사진 속 '부부의 석관(Sarcophagus of the Spouses)'은 에트루리아 특유의 연회 자세로 나란히 기대어 있는 부부를 형상화한 테라코타제 웅장한 장례용 석관으로, 기원전 520~510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천 년간 풀리지 않았던 에트루리아 기원의 미스터리
체르베테리(Cerveteri), 타르퀴니아(Tarquinia), 볼테라(Volterra)... 이탈리아 반도 최초의 위대한 문명(기원전 800~50년)을 상징하는 명성 높은 에트루리아 도시들입니다. 이들은 뛰어난 금속 세공 기술과 독보적인 문화 생산력,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비(非)인도유럽계 언어를 통해 당대 여러 문명과 확연히 구별되는 매우 독특한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수 세기 동안 그들의 기원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실제로 고대부터 그들의 기원 문제는 당대 최고의 석학들을 괴롭히는 난제였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헬라니코스(Hellanicus of Lesbos, 기원전 5세기)의 주장처럼 동방에서 이주해 온 민족일까요? 아니면 헤로도토스(Herodotus, 기원전 5세기)가 주장했듯이 오늘날 터키 남서부에 해당하는 리디아에서 건너온 이주민일까요? 혹은 이탈리아 중부 알프스 산맥의 라에티아인(Rhaetians)의 후손이라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기원후 1세기 그리스의 디오니시우스 오브 할리카르나수스(Dionysius of Halicarnassus)만이 에트루리아인이 선주민인 청동기 시대 빌라노바(Villanovan) 문화 사람들의 후예로서,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집단이라고 보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설명이 현재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큰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의 장례 예술: 이탈리아 타르퀴니아(Viterbo) 인근 몬테로치(Monterozzi) 네크로폴리스에 위치한 '표범의 무덤'에 그려진 음악가 중 한 명. © Leemage / AFP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유전학은 이 물음에 더욱 정확한 답을 내놓으려 하고 있습니다. 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게재된 연구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바실리카타, 라치오 등 여러 지역을 대상으로 약 2천 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게놈 분석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연구는 첫째, 철기 시대 초(기원전 800년경)부터 서기 초기까지 에트루리아인이 활동하던 시기, 둘째, 서기 1~500년, 마지막으로 서기 500~1000년의 세 시기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12개 고고학 유적에서 수집된 82명의 고대인 샘플을 바탕으로, 측두골 일부와 치아에서 추출한 DNA를 이용해 분석이 수행되었습니다. 저명한 팔레오유전학자 요하네스 크라우제(Johannes Krause)가 이끄는 연구진—그는 현재 독일 예나(Jena)에 있는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Max-Planck Institute for Evolutionary Anthropology) 소장이다—는 이 데이터가 "에트루리아와 관련된 집단의 유전적 기원, 그리고 당대 및 이후 인구집단과의 관계에 관한 핵심 질문"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트루리아 영토의 최대 확장 범위와 DNA 샘플이 출토된 고고학 유적의 위치를 표시한 이탈리아 반도 지도. © Max Planck Institute / Johannes Krause / Science Advances
철기 시대 에트루리아인, 이탈리아 중부의 토착민이었다
분석 결과는 실제로 "기원전 첫 번째 천년기 동안 현지 유전자 풀이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 철기 시대 이탈리아 중부의 에트루리아인은 토착 기원임이 입증되었으며, 하나의 균질한 유전 집단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연구에 따르면 "문화적·언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에트루리아인은 로마의 라틴인(Latins)과 같은 인접 동시대 집단과 공유되는 유전 프로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결론적으로 "일부 가설과 달리, 에트루리아의 유전자 풀은 근동(Near East)에서 이주해 온 집단 이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즉, 에트루리아인의 유전적 유산은 철기 시대부터 로마 공화정 시기까지 최소 800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된 셈입니다.
이번 분석은 2017년 다른 연구팀이 발표한 성과와 상충합니다. 당시 연구는 무를로(Murlo), 볼테라 등 주요 에트루리아 도시와 연결된 지역에 여러 세대 거주해 온 토스카나 옛 가문 구성원들의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활용했습니다. 그 결과는 오늘날 아나톨리아(터키) 인구집단과의 연관성을 시사했고, 이것이 에트루리아인의 근동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해석되곤 했습니다.
원래 금박으로 덮여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7세기 에트루리아 목조 머리 조각. 이탈리아 비테르보도 불치(Vulci)에서 발굴되었다. © Luisa Ricciarini / Leemage / AFP
로마 제국기와 대이동 시기, 유전적으로 변모하다
Science Advances의 이번 연구는 같은 지역의 다른 시기에도 주목했습니다. 그 결과 서기 초기와 5세기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 관찰되었습니다. 로마 제정기(기원전 1세기~서기 5세기)에 연구 대상 인구의 50%가 동지중해 계통 집단과의 혼혈 흔적을 보였는데, 여기에는 로마 제국 내 노예나 전란으로 이동한 군인들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적 변화는 사회·경제적·지리적 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로마 제국이 대규모 인구 이동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요하네스 크라우제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이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 이후인 중세 전기(500~1000년)에는 롬바르드 왕국과 관련된 이들을 포함해 북유럽 출신 개인들의 이주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결과들은 중세 전기 인구와 현재 토스카나, 바실리카타, 라치오 지역 주민들 사이에 유전학적 연속성(continuum)이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 주민들의 주요 유전자 풀이 약 1000년 전에 이미 형성되었음을 시사하며, 기독교 기원 후 첫 번째 천년기의 역사적 사건들이 이탈리아 반도 상당 부분의 유전적 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