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시돈(Sidon)에서 최근 발굴된 13세기 십자군 집단무덤은 그 자체로 극히 희귀한 유적입니다. 이번 발견은 십자군 전쟁 시대가 실제로 얼마나 잔혹했는지를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13세기 시돈(레바논) 습격 전투의 생생한 묘사. 프랑스에서 1244년부터 1254년 사이 제작된 『마치오프스키 성경(Maciejowski's Bible)』의 삽화.
찔리고, 베이고, 잘리고, 참수당한 채 뒤엉킨 인골. 최소 25명 개인의 유해에서 수많은 외상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들은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시돈에 위치한 생루이 성(Château Saint-Louis) 북동쪽 해자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레바논 시돈에 남아 있는 생루이 성 폐허. © Photos 12/Alamy/AlexeIA/AFP
옛 이름 '사게트(Sagette)'로 불린 이곳에서 확인된 두 기의 집단무덤은 프랑크식 허리띠 버클과 십자군 전쟁 시기(1097~1291)에 주조된 동전 등을 통해 연대가 측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서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과 성지 탈환을 위해 벌인 군사 원정이 막을 내리던 13세기 후반의 유물로 판명된 것입니다.

레바논 시돈의 중세 집단무덤 모습. Credits: PLoS ONE
다양한 출신 배경을 지닌 십자군들
영국 본머스 대학교(University of Bournemouth) 고고학자들이 수습한 모든 골격에는 칼이나 도끼 같은 날붙이 무기에 의해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의 분석 결과는 학술지 《PLoS ONE》에 게재되었습니다. 치아 동위원소 분석과 DNA 연구에 따르면 일부 희생자는 유럽 출신이었고, 일부는 근동 지역 토착 혈통이었으며, 소수는 동서 양쪽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혼합' 혈통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역사 문헌이 전하는 십자군 사회 구성의 다양성과 정확히 일치하는 결과입니다.

빨강과 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시돈 유구에서 출토된 십자군 골격에서 발견된 날붙이 무기 상처의 흔적. © PLoS ONE
중세 연대기에 따르면 성 루이도 유해 매장에 참여
이 유해가 발견된 시돈은 1110년부터 100년 넘게 십자군이 점령한 전략적 요충 항구 도시였습니다. 당시 여러 해안 거점들과 함께 이 도시는 동방 라틴 국가들의 중추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1253년 다마스쿠스의 맘루크 세력이 예루살렘 왕국에 대한 일종의 역습 작전을 펼치며 십자군이 도시 방어에 사용하던 요새를 포위 공격해 파괴했습니다. 이 사건은 《에라클 황제의 역사(L'Estoire de Eracles)》와 같은 13세기 중세 연대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1254년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9세, 즉 성 루이(Saint Louis)가 요새를 재건했으나 1260년 맘루크에게 다시 함락되었고, 이후 십자군이 재탈환하여 1291년 버려질 때까지 통제권을 유지했습니다. 영국 고고학자들은 생루이 성 인근에서 발굴된 집단무덤이 이 두 차례 충돌 중 하나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십자군 기록에 따르면 제7차 십자군을 이끌던 성 루이는 1253년 공격 당시 성지에 있었고, 직접 시신 매장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국왕을 따랐던 샹파뉴의 센샬 장 드 조앵빌(Jean de Joinville)의 연대기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성 루이)는 죄다 썩어 악취가 나는 시신들을 직접 옮겨 땅에 판 도랑에 안치했다. 다른 이들은 코를 막았지만 그는 한 번도 코를 가리지 않았다."

장 퓌셀(Jean Pucelle)의 『잔 데브뢰 시간서』 세부 화면. 1253년 맘루크의 시돈 습격 때 살해된 십자군 유해를 수습해 매장하는 것을 돕는 프랑스 왕 성 루이를 묘사.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The Cloisters Collection.
유해의 상처가 증언하는 중세 전쟁의 처참한 현실
"이런 집단매장은 위기의 순간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이들에게 개별적인 기독교식 장례를 치러줄 시간조차 없었다는 뜻이죠." 프랑스 국립 예방고고학연구소(Inrap)의 고고인류학자 이브 글레즈(Yves Gleize)는 이렇게 평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아틀리트(Atlit) 발굴 조사를 총괄하며, 현재 예루살렘 왕국 최대급 요새 중 하나인 샤토 펠랭(Château-Pèlerin) 성 기슭에 위치한 동방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십자군 묘지를 연구 중입니다. 1291년 8월 14일, 라틴 동방 각지에서 온 마지막 십자군들이 함락이나 정복당하지 않은 채 스스로 철수한 마지막 거점이 바로 이곳입니다. 강력한 항구 도시 아코(Acre)가 함락되고 석 달 뒤의 일이었습니다.
시돈에서 벌어진 전투는 십자군의 존재가 점차 도전받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이 유해에서 발견된 상처들은 중세 전쟁이 얼마나 처참한 현실이었는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인류학자 피어스 미첼(Piers Mitchell)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