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그리스보다 천 년 앞서… 37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쓰인 피타고라스 정리

수학의 아버지는 전통적으로 그리스인들, 특히 유클리드, 탈레스, 피타고라스에게 돌려진다. 하지만 피타고라스의 이름을 딴 그 정리는 사실 그리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이 정리를 지도를 작성하고 토지를 구획하는 데 실제로 활용했다.

그리스보다 천 년 앞서… 37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쓰인 피타고라스 정리

호주 수학자 대니얼 맨스필드(Daniel Mansfield)에 따르면, 점토판 Si.427은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정밀한 토지 설계도를 작성하기 위해 피타고라스 삼조를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업데이트] 본 기사는 2021년 8월 23일 Sciences et Avenir 웹사이트에 게재된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수학사 학자 크리스틴 프루스트(Christine Proust)의 코멘트가 추가되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유명한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자신의' 정리를 최초로 증명한 인물이라면, 기원전 2천 년기부터 서기 초기까지 메소포타미아에 자리 잡았던 바빌로니아 문명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이 정리를 활용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 활용 사례 중 하나가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바빌로니아인은 뛰어난 수학자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수학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계산의 실천은 기원전 4천 년기부터 등장했으며, 기원전 3천 년기 말부터 수학 교육은 육십진법, 즉 60을 밑으로 하는 기수법에 기반을 두었다. 오늘날 우리가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60초가 1분, 60분이 1시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숫자 표기는 두 가지 부호, 즉 '못'(60의 자리와 1의 자리)과 '셰브론(∠ 모양)'(10의 자리)을 사용하며, 위치 기수법을 따른다. 즉 같은 못이라도 위치에 따라 60을 나타낼 수도 있고 1을 나타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8×8의 곱은 왼쪽에 60을 세는 못 하나, 오른쪽에 1을 세는 네 개의 못으로 표기된다.

현재 남아 있는 계산용 점토판은 대부분 연습용이다. 이런 점토판은 희귀한 물건이 아니며, 소위 '학교' 점토판만 약 2000점이 발굴되었다. 그중 일부는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지식 수준을 특히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것이 1922년 수집가의 이름을 딴 '플림프턴 322(Plimpton 322)'로, 1945년 피타고라스 삼조 목록, 즉 a² + b² = c²라는 유명한 등식을 만족하는 세 숫자의 조합이 확인된 이후 수많은 연구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수학사 학자 크리스틴 프루스트가 Images des Mathématiques에 게재한 글에 따르면, 이 점토판에는 육십진법 숫자가 새겨진 이중 입력표가 있으며, 열 하나 위에는 "대각선의 제곱에서 1을 빼고, 폭을 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가로 길이가 1인 직사각형을 생각하면 이 문장은 c² − 1² = b², 즉 c² = b² + 1², 따라서 a² + b² = c²로 번역된다.

플림프턴 322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 판의 정확한 성격은 아직 논쟁 중이다. 실제로 메소포타미아인들이 피타고라스 삼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대한 지식은 여러 가설이 제안되었음에도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점토판의 재발견이 드디어 그 실용적 용도 중 하나를 밝혀냈다.

Si.427, 수학의 실용적 활용을 입증하다

학술지 Foundations of Science에 게재된 논문에서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UNSW)의 수학자이자 연구원인 대니얼 맨스필드는 그가 '응용 수학의 가장 오래된 사례'라고 소개하는 것을 공개했다. 기원전 19세기 말~16세기 말의 고바빌로니아 시기에 해당하는 약 3700년 된 점토판이다. 1894년 당시 이라크에서 발견되어 발굴을 담당한 고고학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던 이 점토판(Si.427)은 오스만 제국 붕괴 이후 행방을 감추었다. 맨스필드는 직접 이 점토판을 찾아 나섰고, 끝내 이스탄불의 고고학 박물관 진열장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그 결과 그는 고바빌로니아 시기 최초의 지적(cadastral) 문서, 즉 토지 소유 경계를 확정하기 위한 문서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 점토판은 필지를 여러 기하학적 도형, 즉 직사각형·사다리꼴·직각삼각형으로 세분하여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개의 피타고라스 삼조인 (5, 12, 13)과 (8, 15, 17)가 새겨져 있다. 이는 토지 일부가 매각된 후 이루어진 구획이며, 맨스필드에게 이것은 현실적 문제 해결을 위해 피타고라스 삼조가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는 토지 사유화의 시작기와 겹치며, 분쟁이 지적장부 작성의 배경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다른 점토판의 기록과도 부합한다. "고위 인사들 간의 분쟁을 종식시키려면 측량의 정밀성이 필수적이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연구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설명했으며, "누구도 바빌로니아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피타고라스 삼조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수학사 학자 그레고리 샹봉(Gregory Chambon)에게는 메소포타미아 기하학이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메소포타미아 기하학이 지적장부 작성에 활용되어 왔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온 사실입니다"라고 그는 Sciences et Avenir에 말했다. 고바빌로니아 제국 성립 이전인 아카드 제국(기원전 24~22세기) 시기와 우르 왕조(기원전 22~21세기) 시대에도 측량사들은 이론적인 기하학 원리를 적용해 재산 도면을 작성했다. 지금까지 바빌로니아 시기의 지적 성격의 문서가 발굴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그는 문서들이 흩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아카드 제국 시절 국가는 매우 중앙집권적이고 관료적이어서 작성된 문서 상당수가 공공 행정 소관이었습니다. 반면 고바빌로니아 시대에는 베두인족이 유입되어 바빌론, 마리, 라르사 같은 왕국을 세우면서 사회적·민족적·문화적 변화가 일어났고, 사적 기록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응용 수학', 특히 측량에 기하학을 적용하는 일은 수학 그 자체만큼 오래되었으며, 기원전 4천 년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Sciences et Avenir의 확인 요청에 답한 크리스틴 프루스트는 강조했다. 그녀는 또한 "이 점토판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었지만, 역사가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알려진 고대 행정 문서 대부분이 회계나 공공 조사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아시리아학자들은 이미 권력 운영과 경제 생활에서 숫자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밝혀낸 바 있다. 메소포타미아 수학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학의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기능, 그리고 그것이 수학의 지적 본성과 불가분하다는 점에 대해 점차 합의가 형성되어 왔다.

"맨스필드는 지적장부 제도 자체를 발견한 것도, Si 427이라는 지적 문서의 존재를 발견한 것도, 메소포타미아의 응용 수학을 발견한 것도, 설형문자 수학 텍스트에서 피타고라스 정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지적 문서 안에서 피타고라스 삼조를 찾아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만큼 극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가벼운 성과는 아닙니다"라고 크리스틴 프루스트는 평가했다. Si.427 점토판의 구성을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UNSW의 소개 자료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