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알리에(Allier) 주 남부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의 요새화된 정착지와 함께 매장된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번 발견은 약 3천 년 전 이 지역에서 행해졌던 신비로운 '유물 매장' 관습의 실체를 일부 밝히는 성과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고고학자들이 금속 유물들의 원래 배치 상태를 그대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중부 고원 지대인 마시프 상트랄(Massif Central)에는 청동기 시대 말기(기원전 2200~800년)에 조성된 요새화된 정착지가 다수 존재합니다. 이 지역은 비옥한 계곡과 목축에 적합한 목초지, 파리 분지와 지중해를 잇는 주요 교역로와의 근접성, 그리고 구리와 결합해 청동기를 생산할 수 있는 희귀 금속 자원인 주석의 산출 등 경제 발전에 유리한 조건 덕분에 당시 인구가 집중적으로 유입되며 크게 번영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알리에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말기 요새 정착지는 선사 시대 사회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발굴은 2019년 프랑스 문화부의 승인을 받아 설립된 공동연구 프로젝트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의 베그(Bègues)와 장자(Jenzat)'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며, 피에르-이브 밀상(Pierre-Yves Milcent)과 다비드 랄르망(David Lallemand)이 주도하고 툴루즈 장 자우레스 대학교와 TRACES-UMR 5608 연구소가 수행했습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금속 유물이 출토된 청동기 시대 정착지"
청동기 시대 말기의 사회 구조는 이후 철기 시대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농목업 경제는 상당한 발전 단계에 이르렀고, 정착지들은 때때로 집락 형태로 조직되었으며, 야금 생산은 활발했고, 유럽 전역은 광범위한 교류와 교역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정착지는 오랫동안 흩어져 있는 농가나 작은 언덕 위 취락 정도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방어 시설이 발굴되면서 청동기 시대 말기 사회 조직에서 방어 건축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재평가되고 있으며, 그 군사적 역할 또한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알리에 주 남부, 간(Gannat) 인근에서 발굴된 요새 정착지는 보기 드문 규모를 자랑합니다. 특히 이곳에서는 지름 30cm의 항아리 세 개와 금속 유물이 담긴 구덩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연구진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곳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금속 유물이 출토된 청동기 시대 정착지이며, 해당 시기 기준으로 유럽에서도 가장 풍부한 유적으로 속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출토된 유물 자체는 특별히 이색적인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무기, 장신구와 소품, 말갖춤 장비 등이지만, 그 수량과 보존 상태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연구를 공동 주도한 피에르-이브 밀상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수백 점의 온전한 유물을 한꺼번에 발견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이들 중에는 발트해, 북부 이탈리아, 남부 잉글랜드에서 온 유물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이미 대규모 상거래망이 존재했음을 입증합니다.
유물들은 봉헌물로 함께 묻힌 것으로 추정
알려진 청동기 시대 유물 대부분은 장인이나 농부에 의한 우연한 발견, 혹은 도굴을 통해 나왔기 때문에 고고학자들이 유물의 배치 상태를 연구할 기회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유물의 배치는 의도적인 매장의 경우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피에르-이브 밀상이 이끄는 연구팀의 이번 발견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약 3천 년 전 그대로의 상태로 조성된 금속 매장 유구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풀어야 할 미스터리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죽은 이나 종교적 예배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소에 금속 보물들을 묻었을까요? 이 논쟁은 100년 넘게 학계를 양분해 왔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유물 저장소가 용융하거나 판매할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 기능을 했다고 보았습니다. 밀상은 "1970년대 후반까지 지배적이던 이론"이라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 이론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등장한 경쟁 가설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발굴에서는 실제로 습지 수준에서 유물 저장소가 발굴되었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재고를 늪지대에 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이것이 봉헌물, 즉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 결론짓습니다.
알리에의 여러 매장 유구에 대한 검토 결과, 이것들이 매우 체계화된 관습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연구진은 유물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항아리 바닥에는 장신구를, 그 위에는 도끼날을 놓는 식으로, 이는 명백히 의식의 흔적으로 보입니다. 출토 맥락 역시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봉헌은 정착지가 건설되거나 버려지는 시점에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지중해 주변의 동시대 문화권에서 행해지던 관습과도 일치합니다. 밀상은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청동기 시대의 유물 매장이 묘지나 정착지에서 떨어진 곳에 이루어졌다고 믿어져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발견은 청동기 시대 말기 유물 매장 관습에 대한 의식적 해석에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유물이 원래의 배치와 맥락을 유지한 채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금속의 조성과 기원을 규명할 수 있는 후속 연구의 길도 열어주고 있습니다. 밀상은 앞으로 "수십 년에 걸친 연구와 분석"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