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영토에 있었던 독일군 포로수용소 '슈탈라크(Stalag) II-D' 유적지에서 대규모 발굴 조사가 진행되면서 수십 개의 집단 매장지가 확인되었다. 가장 먼저 발견된 64구의 유해를 신원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유전자 분석과 기록 보관소 자료를 결합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 대부분은 붉은 군대 소속 병사들로, 끝없는 강제 이동 끝에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장티푸스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1941년 7월 러시아 전선: 5만 명의 러시아 포로들이 수용소로 향해 행진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포로들의 비극
제2차 세계대전 중 수백만 명의 병사들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1939년부터는 폴란드인들이, 프랑스 침공 이후에는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병사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 작전 '바르바로사'가 개시되면서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국방군(베어마흐트)의 초기 승리로 수십만 명의 소련 병사들이 항복했다. 이들 포로 대부분은 처형되거나 굶주림으로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극소수만이 중부 유럽의 슈탈라크(Kriegsgefangenen-Stammlager, 문자 그대로 '전쟁포로 본부 수용소'의 약칭)로 이송되었다. 폴란드 슈탈라크 II-D 유적지에서 연구자들이 밝히려 하는 것은 바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다.
스타르가르트 슈탈라크 유적지에서 발견된 붉은 군대 병사들
현재 슈체친 인근 스타르가르트 슈체친스키에 해당하는 옛 포로수용소 슈탈라크 II-D에 대한 발굴은 2021년 10월 시작되었고, 곧바로 수십 개의 집단 무덤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그중 한곳만 발굴되어 64명의 남성 유해가 확인되었다. 폴란드 통신사 보도에 따르면, 슈체친 포메라니아 의과대학 법의유전학과장 안제이 오소프스키(Andrzej Ossowski)는 이들 대부분이 붉은 군대 병사라고 밝혔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하며, 그중에는 폴란드군과 벨기에군 제복 조각도 포함되어 있지만, 러시아 포로 곁에 이 두 나라 병사가 함께 묻혔는지는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여전히 실종 상태인 400만 명이 넘는 소련 군인들
연구진의 모든 작업은 이 병사들의 신원을 찾고 사인을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독일 측에서는 구 독일군 전사자 유족 정보국인 도이체 딘스트슈텔레(WASt)의 기록을, 러시아 측에서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인 OBD 메모리얼(OBD Memorial)을 활용할 수 있다. 2007년 러시아 연방 국방부가 구축한 이 사이트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 기간 동안 전사하거나 실종된 붉은 군대 병사 관련 공식 문서 수천만 건이 디지털화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100만 명이 넘는 포로의 이름이 확인되었지만, 붉은 군대가 확보한 국방군 문서에 따르면 500만 명이 넘는 소련군이 포로로 잡혔으며, "즉 400만 명이 넘는 이름이 역사 속에서 잊히고 지워졌다"는 것이다.
유전자 분석과 기록 연구의 결합
폴란드 연구자들은 2013년 익명의 무덤에서 발견된 군인 유해에 맞춘 신원 확인 절차를 마련했는데, 이는 법의인류학적 검사, DNA 추출을 통한 유전자 분석, 군사 기록 연구를 하나로 결합한 방식이다.
소련 병사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연구진은 교차 검증 방식을 사용한다. 유해 근처에서 포로 신분표가 발견되면 일련번호를 확보하게 되고, 이 번호를 스타르가르트 수용소로 검색 범위를 좁혀 OBD 데이터베이스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면 붉은 군대가 압수한, 독일군이 포로 입소 시 작성한 신분 카드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카드에는 나이, 신장, 머리 색, 지문, 사진 등 수많은 정보가 담겨 있어, 연구진은 인류학적 검사 결과와 여덟 가지 식별 특징이 일치하면 신원이 입증된 것으로 간주한다. 또한 소련 당국은 스타르가르트에 묻힌 병사들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었지만, 적의 포로가 된 이들을 '배신자'로 간주하여 가족들에게 사망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한다.
모두 1941년 12월에 사망
OBD 사이트에 기록된 카드 정보에 따르면, 스타르가르트에서 발견된 러시아 병사들은 1941년 12월 단 며칠 사이에 사망했다. 인류학적 검사에서 폭력적인 사망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오히려 극심한 탈진의 흔적이 감지되었다. 쇠약해진 몸은 감염병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 연구진은 뼈 조직에서 병원체 존재 여부를 검출하는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폴란드에서 처음 시도되는 작업이다. 포로들, 특히 러시아인들이 처한 열악한 생활 환경을 고려할 때, 연구진은 장티푸스의 흔적을 발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 포로에게 예정된 특별한 운명
수용소에 수감된 국방군 포로 모두가 같은 생활 조건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민족 계층 서열에 기반한 나치 이념은 소련인들에게 '절멸 정책'에 따른 특별한 운명을 부여했다. 다른 포로들은 이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슈탈라크 II-B(현재 스타르가르트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차르네)에 수감되었던 제35포병연대 소속 하사관 레미 드 베티니(Rémy de Bettignies)는 전쟁 회고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축 운송 차량에 아무 식량 없이 15일간 이동한 러시아 병사들은 '해골'이 되어 있었고, 막사에 자리 잡은 후에도 위생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장티푸스는 주로 러시아인 구역에서 풍토병처럼 만연했는데, 이는 쇠약, 영양실조, 완전한 위생 부재가 조장했다. 시신은 막사 밖에 놓였고, 매일 아침 마차가 시신을 실어 수용소 밖 구덩이로 운반했다." 이 프랑스인 부사관은 슈탈라크 II-B 근처에 판 이 무덤들이 1968년에 발견되었으며, 그곳에서 4만 명의 포로 시신이 확인되었다고 전한다.
인류학 연구의 미래 현장이 될 슈탈라크
역사학자들은 폴란드 영토 내 제2차 세계대전 수용 시설 유적지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집단 무덤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다. 2021년 10월에 시작된 이번 발굴은 슈탈라크 II-D 유적지에 대한 전수 조사의 첫 단계다. 폴란드 연구진은 이곳에서 추가 유해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다른 국적 포로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신원 확인은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슈탈라크 II-D는 국방군이 운영한 가장 큰 포로수용소 중 하나였다. 전쟁 내내 가동되었으며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러시아,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 전역의 병사들이 수감되었다. 모든 포로가 본 수용소에 머문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이후 '코만도(Kommando)'라 불리는 작업반으로 편성되어 지역 농장이나 공장에서 일했다. 이런 노동 현장 중 일부는 특히 가혹했고, 많은 포로가 수감 중 사망했으며, 대개 작업장 근처에 묻혔다. 2013년 안제이 오소프스키 팀이 신원을 확인한 슈탈라크 II-B와 315에 배속된 소련 포로 10명도 그런 경우다. 이들은 배정받은 농장의 열악한 생활 조건 때문에 모두 사망했으며, 스물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