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철의 인류학과 고고학: 고고학자 로랑 올리비에(Laurent Olivier)가 답하는 세 가지 질문

2020년 3월 4일과 5일, 파리의 카이 브랑리-자크 시라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Jacques Chirac)에서 일반인도 참관할 수 있는 국제 심포지엄 '철의 인류학과 고고학'이 개최된다. 이 행사가 지니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발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고고학자 로랑 올리비에(Laurent Olivier)를 만났다. 그는 생제르망앙레(Saint-Germain-en-Laye)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고고학박물관(Musée d'Archéologie Nationale, MAN)의 학예사이기도 하다.

철의 인류학과 고고학: 고고학자 로랑 올리비에(Laurent Olivier)가 답하는 세 가지 질문

창과 방패를 든 전사 형상의 철제 조각상. 말리의 도곤(Dogon)족 작품.

카이 브랑리-자크 시라크 박물관에서 2020년 3월 29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쇠를 두드리다, 아프리카 대장장이들의 예술(Frapper le fer, l'art des forgerons africains)'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심포지엄은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전문가들은 지난 수천 년간 철이 어떻게 등장하고 활용되어 왔는지에 관해 오늘날까지 밝혀진 내용을 총체적으로 조명할 예정이다. 로랑 올리비에는 철 야금술이 지닌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심포지엄 주제를 '철의 고고학과 인류학'으로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로랑 올리비에: 철과 제강술은 여러 문화권에서 저마다 독자적으로 출현했습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상징적·사회적으로 강력한 가치를 지닌 이 광석을 두고, 최초의 채굴에서부터 물건 제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각을 교차시키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철은 어떻게 광석에서 추출되었습니까? 언제부터,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였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성형되었으며, 어떤 기술적 공정을 거쳤습니까? 제강술은 언제 태어나 발전했고, 긴 세월 속에서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도 모두 이번 모임에서 다뤄질 질문들입니다. 고고학적 시선만큼이나 인류학적 시선도 아울러, 이러한 창작물이 지닌 예술적 차원 전체를 함께 살피게 됩니다.

'운석철, 즉 우주에서 온 철이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철입니다'

철의 인류학과 고고학: 고고학자 로랑 올리비에(Laurent Olivier)가 답하는 세 가지 질문

파라오 투탕카멘(기원전 2천년기)의 유골에서 발견된 운석철 칼날의 단검. 2016년 X선 분석을 통해 그 운석 기원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사진 출처: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 다니엘라 코멜리

철의 출현 시기에 대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로랑 올리비에: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라서 답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사례들은 아프리카 대륙, 특히 파라오 시대 이집트에 남아 있습니다. 바로 운석철(meteoritic iron), 즉 지구 밖에서 온 철로, 인류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된 철입니다. 실제로 1911년 나일 강변의 게르제(Gerzeh) 유적에서 출토된 선왕조 시대의 관형 구슬들은 기원전 3300년경 이미 성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훨씬 더 큰 논쟁거리는 그 과정입니다. 야금 지식이 전파된 것일까요? 아니면 광석으로부터 독립적인 혁신과 발명의 요람들이 각각 솟아난 것일까요? 다만 확실하게 알려진 사실 하나는, 철이 유럽에는 비교적 늦게 도달했다는 점입니다.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0~9세기, 유물 표면에 박힌 작은 철 장식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 철 야금술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시기는 기원전 8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습니다.

당신이 전문가로서 연구해 온 유럽의 철기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로랑 올리비에: 철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변화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회 전반의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철의 사용과 함께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전사 귀족이라는 사회 계층이 생겨났습니다. 기마 전사들의 집단으로, 훗날 켈트 사회에서든 고대 로마에서든 기사도(knighthood)의 뿌리가 되는 계급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처음으로 남자들이 말에 올라타 전투를 벌인 시기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철의 출현과 거의 같은 시기에 빚과 관련된 사회 관계가 나타납니다. 어떤 개인이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면서 형성되는 종속 관계로, 권력 보유자의 무덤이 지니는 거대한 규모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철기시대'(기원전 750~50년)로 불리는 이 시기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 여성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해 거대한 무덤을 축조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 철기시대 인물들은 직경 100m, 높이 20m에 달하는 분묘를 갖추기도 했습니다! 이런 규모의 무덤은 유럽에서 그전까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철기시대는 실질적으로 계급 사회를 낳은 시대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들어서면 권력 집중의 움직임이 가속화됩니다. 철기시대의 귀족층 안에서는 진정한 가문 왕조가 등장했는데, 독일 호흐도르프(Hochdorf)의 제후 무덤이나 최근 프랑스 오브주(Aube) 라보(Lavau)에서 발견된 무덤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권력과 야금술의 이러한 연결고리는 중부 아프리카와 사헬 지역에서도 이어졌는데, 이는 특별전 '쇠를 두드리다, 아프리카 대장장이들의 예술'이 다루는 차원 중 하나로, 소위 '불의 주인들'로 불린 대장장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철의 인류학과 고고학: 고고학자 로랑 올리비에(Laurent Olivier)가 답하는 세 가지 질문

특별전 '쇠를 두드리다, 아프리카 대장장이들의 예술' 포스터. 사진 출처: 카이 브랑리 박물관-자크 시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