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오만 사막에서 발굴된 4000년 전 보드게임, 청동기 시대의 여가를 엿보다

오만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마을 유적 깊숙한 곳, 돌에 정성스럽게 새겨진 신비한 보드게임이 고고학자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오만 사막에서 발굴된 4000년 전 보드게임, 청동기 시대의 여가를 엿보다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게임은 커다란 돌블록에 새겨져 있으며, 중앙에 홈이 파인 13개의 칸으로 구성돼 있다.

일부 고고학적 발견은 인류의 어떤 습관이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일깨워 준다. 보드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보드게임은 고대부터 일상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가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보드게임의 열렬한 애호가였고, 실제로 메헨(mehen), 세네트(senet), 개와 자칼 게임 등 수많은 게임판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1920년대 메소포타미아 도시 우르의 왕실 무덤에서 출토된 '우르의 왕실 게임(Royal Game of Ur)' 역시 현재까지 확인된 보드게임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화려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류는 언제나 놀이를 즐겼고, 그 초기 증거는 이미 여럿 남아 있다.

4000년 된 유희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유물은 오만의 사막 지역이면서도 아직 학계의 조사가 미진했던 쿠마이라(Qumayrah) 계곡, 아인바니사이다(Ayn Bani Saidah) 마을 인근에서 나왔다. 큰 돌에 격자 형태로 새겨진 이 게임판은 청동기 시대 도시 유적에서 발견됐으며, 지난해 12월까지 바르샤바 대학교와 오만 유산관광부가 공동으로 현장 발굴을 진행했다. 게임판에는 13개의 칸이 새겨져 있고, 각 칸에는 일종의 중앙 홈 또는 오목한 부분이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게임이 약 4000년 전 만든 이들을 즐겁게 해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임판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칸이 표시돼 있고 말을 두는 구멍이 마련돼 있습니다. 비슷한 원리를 바탕으로 한 게임들은 청동기 시대 당시 수많은 경제·문화 중심지에서 널리 즐겨졌습니다"라고 연구진은 발표문을 통해 밝혔다.


오만 사막에서 발굴된 4000년 전 보드게임, 청동기 시대의 여가를 엿보다

영국 박물관에 소장된 '우르의 왕실 게임'.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이제 고고학자들에게 남은 과제는 게임의 규칙을 밝혀내는 것이지만, 이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영국 박물관 전문가들이 우르의 왕실 게임의 규칙을 해독하는 데만 50년 넘게 걸렸고, 그 규칙은 2000년 이상 된 점토판에 적힌 설형문자에서 마침내 확인됐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즐기던 이 게임은 현대의 백개먼(backgammon)과 가장 흡사한 형태로, 주사위를 굴려 H자형 판 위에서 말을 경주시키는 방식이었다. 술이나 여성을 내기로 거는 이들도 있었고, 게임의 결과를 길흉화복의 징조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탑들

게임판은 바르샤바 대학교 지중해고고학센터(PCMA UW)의 피오트르 비엘린스키(Piotr Bieliński)와 오만 유산관광부(MHT) 고적국장 술탄 알바크리(Sultan al-Bakri)가 이끄는 발굴팀이 이루어낸 유일한 성과가 아니다. 발굴팀은 최소 네 기의 탑 유적도 발굴했는데, 세 기는 원형, 한 기는 각진 형태였다. 그중 하나는 지름이 20미터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지표면에서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움안나르(Umm an-Nar) 문화로 분류되는 수많은 유적에서 발견되는 이런 눈에 띄는 구조물의 기능은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라고 PCMA UW 소속 고고학자 아그니에슈카 피엥코프스카(Agnieszka Pieńkowska)는 말했다.

연구진은 이 유적에서 구리 가공의 흔적과 함께 구리 유물도 찾아냈다. "이는 당시 오만이 명성을 날리던 막대한 수익의 구리 무역에 이 정착촌이 참여했음을 보여줍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기록에도 이러한 사실이 언급돼 있습니다"라고 피오트르 비엘린스키는 덧붙였다. 이 유적지는 철기 시대 II기(기원전 1100~600년)까지 사람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