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법 저항의 진짜 원인: 제조업 욕구인가, 권리 침해인가?
미국 독립 혁명 이전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항해법(Navigation Acts)에 저항한 이유는 단순히 스스로 상품을 제조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체적인 제조업과 공업 발전에 대한 열망이 저항의 한 요소로 작용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항해법이 식민지 주민들의 경제적 자유와 영국 신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인식에 있었습니다.
항해법이란 무엇이었나?
항해법은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이 중상주의(mercantilism)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시행한 일련의 통상 법령입니다. 이 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 식민지와의 무역은 반드시 영국 소유 선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
• 담배, 면화, 설탕, 인디고 등 '열거품'으로 지정된 상품은 반드시 영국 본토를 경유해야 함
• 식민지 간 직접 무역과 유럽 대륙 국가들과의 교역에 엄격한 제한이 가해짐
경제적 자유에 대한 제약
항해법은 식민지 생산자들이 자신의 상품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판매할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예컨대 버지니아의 담배 재배자들은 네덜란드 상인에게 더 좋은 가격을 제시받더라도, 법적으로 영국 본토 상인에게만 판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영국 본토의 제조업 보호를 위해 식민지에서 모자, 철제 제품 등을 제조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도 시행되면서, 식민지 경제는 구조적으로 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인의 권리'라는 문제 의식
더욱 중요한 것은 식민지 주민들이 자신들을 영국 국왕의 충성스러운 신민이라 여기며, 본국 시민과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항해법과 이후의 여러 무역 규제는 대의원 선출권이 없는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된 것이었기에, '대표 없이 과세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적 불만을 넘어 정치철학적 차원의 저항으로 발전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
독립 혁명으로 이어진 흐름
이러한 불만은 1760년대 이후 관세법, 인지세법, 타운젠드법 등이 잇달아 시행되면서 더욱 격화되었고, 결국 '무역의 자유'와 '신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미국 독립 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요컨대 항해법에 대한 저항은 제조업 육성이라는 실리적 동기 위에, 경제적 자기결정권과 법적 평등이라는 원칙적 명분이 결합된 결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