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이집트에는 피라미드가 몇 개나 있을까? 대부분은 기자의 3대 피라미드(쿠푸, 카프레, 멘카우레)만 알고 있다. 일부는 사카라의 조세르 계단 피라미드와 다슈르의 스네프루 굴절 피라미드를 기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다슈르의 붉은 피라미드, 메이둠의 거짓 피라미드, 메로에의 누비아 피라미드 등 훨씬 더 많은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부터 단순한 폐허 더미에 불과한 것까지 수십 기가 더 있다. 그렇다면 정확히 몇 개일까? 소위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이라 불리는 이 명단이 19세기 중반 최초로 그 수를 세려는 시도였다.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이집트학의 아버지, 카를 리하르트 렙시우스

이 목록의 이름은 작성자인 카를 리하르트 렙시우스(Karl Richard Lepsius)에서 유래했다. 1810년생 프로이센 고고학자인 그는 이집트학을 학문적 규율로 정립한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라이프치히, 괴팅겐, 베를린 대학에서 고전 고고학을 전공하고 1833년 De tabulis Eugubinis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샹폴리옹의 상형문자 연구에 매료되어 파리로 건너가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직접 연구했다. 이후 유럽 각지의 박물관에 소장된 이집트 유물들을 분석하며 전문성을 쌓았다.

1837년에는 상형문자 연구에 관한 독자적 저서를 출간해 샹폴리옹의 연구를 확장하면서도 모음 표기 등 일부 쟁점에서 이견을 제시했다. 1842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장례 및 주술 문서들을 번역해 Das Todtenbuch der Ägypter(이집트인의 사자의 서)로 출판했는데, 이 명칭이 오늘날 '이집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로 굳어졌다.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프로이센 왕실 후원의 이집트·누비아 원정

이런 업적은 알렉산더 폰 훔볼트와 로베르트 분젠 같은 석학들의 추천을 받아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후원으로 이집트·누비아 원정대를 이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샹폴리옹과 이폴리토 로셀리니가 이끈 프란코-토스카나 원정의 선례를 따른 것이었다. 원정의 목표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적을 탐사·기록하고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Ägyptisches Museum) 소장품을 확충하는 것이었는데, 현재 약 1만 5천 점에 이르는 소장품 중 상당수를 그가 수집했다.

1842년 시작된 여정은 기자, 아부시르, 사카라, 다슈르, 룩소르, 카르나크, 누비아 등 파라오 시대의 기념물이 있는 모든 곳을 아울렀다. 3년 넘게 현지 언어를 연구하고 베니 하산, 파이윰 등지에서 발굴을 진행했는데, 파이윰에서는 마네토, 디오도로스 시쿨루스, 스트라본, 대 플리니우스, 폼포니우스 멜라 등 그리스·로마 작가들이 기록한 유명한 '미궁(Labyrinth)'을 발굴해냈다.

아메넴하트 3세의 피라미드와 미궁의 발견

미궁은 숨겨진 터널, 방, 예배당, 지하 납골당으로 구성되며, 둘레 385m × 158m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북쪽 끝에는 중왕국 제12왕조 파라오 아메넴하트 3세(세소스트리스 3세의 아들, 이집트에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군주)의 피라미드가 자리했다. 반쯤 무너진 이 피라미드가 렙시우스로 하여금 피라미드 연구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만든 계기였을 것이다. 이후 그는 쿠르나, 시나이, 타니스 등지에서도 발굴을 이어갔다.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초기 발굴의 한계와 귀환

당시에는 제대로 된 발굴 기법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근대적 발굴 방법론의 선구자는 훗날 영국인 윌리엄 매슈 플린더스 페트리(그도 나중에 미궁에서 작업함)로 평가받는다. 렙시우스는 오늘날 용납되지 않는 방식, 예컨대 다이너마이트로 거대 석재를 깨부수는 방식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1846년 베이루트, 다마스쿠스, 바알벡, 이스탄불을 거치는 이국적 경로로 유럽에 귀환했다.

그해는 그에게 두 배로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엘리자베트 클라인과 결혼해 6남매를 두었는데, 그중 리하르트(지질학자), 그리제임(화학자), 라인홀트(예술가), 요하네스(신학자이자 동양학자) 등이 아버지 뒤를 이어 각 분야 권위자가 되었다. 동시에 베를린 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원정 성과를 집대성한 저작 Denkmäler aus Äegypten und Äethiopien(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기념물)을 1849~1858년 12권(본문 5권, 도판 7권)으로 출간했다. 직접 판화와 석판화를 익힌 그답게 수많은 삽화, 지도, 평면도, 상형문자 모사도 등을 손수 제작했다.

최초의 체계적 피라미드 목록: 67기의 피라미드와 130기의 묘지

이 저작에서 그는 67기의 피라미드와 130기의 기타 묘지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하이집트(북부)에서 상이집트(남부) 순으로 로마 숫자로 번호가 매겨졌다.

  • 1번(아부 로와시, 기자 북쪽 8km): 제드에프라(쿠푸의 아들) 피라미드 등 3기. 최북단에 위치했으나 고대로부터(로마 시대 채석장으로 쓰이며) 파괴됨.
  • 기자: 3대 피라미드 외 위성 피라미드 6기 포함.
  • 자위트 엘아리안: 2기.
  • 아부 구랍: 1기.
  • 아부시르: 13기.
  • 사카라: 계단 피라미드 외 17기 추가.
  • 다슈르: 13기.
  • 엘 리시트: 5기.
  • 메이둠: 1기.
  • 엘 라훈: 1기.
  • 최종(하와라, 파이윰): 아메넴하트 3세 피라미드.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이들 모두는 제3왕조(기원전 2686~2613년)부터 제13왕조(기원전 1800~1650년) 사이에 축조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목록은 그대로 통용되지 않는다. 렙시우스가 마스타바나 다른 거대 구조물을 피라미드 잔해로 오인하는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다. 검토 대상 중 20기 이상이 목록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과오를 넘어선 선구적 업적과 현대적 재평가

하지만 과학의 태동기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 프로이센 선구자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는 최초의 체계적 분류 시도였고, 그가 올바르게 목록화한 유적들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그의 번호 체계가 통용된다. 2008년에는 저명한 이집트 고고학자이자 전 유물최고위원회 사무총장 자히 하와스가 모래언덕에 덮여 '실종'되었던 렙시우스 목록의 한 피라미드 기단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1846년 프로이센 고고학자가 만든 최초의 이집트 피라미드 목록, 렙시우스 목록(Lepsius List)

평생을 이집트학에 바친 거장의 말년

1855년 베를린 박물관 공동 관장, 독일 고고학 연구소 로마 분소장, 베를린 왕립 도서관장 등을 역임하며 명성을 쌓았다. 지금도 간행되는 이집트학 전문 학술지 Zeitschrift für ägyptische Sprache und Altertumskunde를 창간하기도 했다. 1884년 타계하기 전 두 차례 더 이집트를 방문했다. 1866년에는 나일 델타 탐사와 타니스 발굴 중 '카노푸스 칙령(Decree of Canopus)'으로 알려진 프톨레마이오스 3세 시기(기원전 237년) 비석을 발견했는데, 그리스어(운시알체)와 이집트어(상형문자·데모틱체)로 병기되어 '제2의 로제타 스톤'이라 불린다. 1869년에는 수에즈 운하 개통식 참석차 마지막 방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