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튀니지 헨치르 흐니치 유적에서 밝혀진 '황무지에 관한 하드리아누스 법' 비문의 출토 맥락

튀니지 헨치르 흐니치 유적에서 밝혀진  황무지에 관한 하드리아누스 법  비문의 출토 맥락

헨치르 흐니치(Henchir Hnich) 유적은 로마 제국 속주였던 아프리카 프로콘술라리스(Africa Proconsularis) 지방, 바그라다스(Bagradas) 강 중류 계곡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대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제국 직영 재산과 연계된 농촌 정착지이다. 오늘날에는 인구가 드문 농업 지역이지만, 고대에는 도시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핵심 지역으로서 로마 시와 제국 전역에 올리브유와 밀을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세기, 황무지 개간을 위한 법령의 제정

서기 2세기에 들어서면서 제국 권력은 대규모 농장의 집약적 경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영지를 관리하던 행정 체계가 재편되었고, 척박한 한계지의 경작을 촉진하기 위한 규정들이 조정·제정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버려진 땅의 개간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된 렉스 하드리아나 데 아그리스 루디부스(lex Hadriana de agris rudibus), 즉 '황무지에 관한 하드리아누스 법'이다. 이 법이 새겨진 비문은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인데, 네 면 중 세 면에 글이 새겨진 높이 1.20m의 제단 형태를 하고 있다. 비문은 파손이 심하고 표면 마모 또한 심각하여, 텍스트 복원을 위해 3D 모델링 기술이 동원되었다.

2019년 발굴 조사와 비문의 '두 번째 생애'

2019년 현장 조사를 통해 이 비문이 출토된 맥락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비문은 올리브 압착 시설에 통합된 빔 프레스(beam press)의 일부로 재사용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비문의 이러한 '두 번째 생애'는 서기 4~5세기로 추정되는데, 당시에는 이미 렉스(lex)의 법적 효력이 소멸한 뒤였다.

튀니지 헨치르 흐니치 유적에서 밝혀진  황무지에 관한 하드리아누스 법  비문의 출토 맥락

육상·지구물리 탐사로 밝혀진 유적의 구조

육상 보행 조사와 지구물리학적 탐사 작업을 통해 정착지의 점유 변천 과정뿐 아니라 묘지(네크로폴리스) 지역과 최소 세 동의 대형 건축물이 확인되었으며, 그중 하나가 비문이 재사용된 토르쿨라리움(torcularium), 즉 압착 시설 건물로 판명되었다. 조사 과정에서 다수의 묘비명과 함께 테르미누스(terminus)라 불리는 경계석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해당 농장의 제국 직영 성격을 확증해 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이 비석은 한쪽 방향의 토지는 제국 소유이며, 반대편 토지는 대규모 사유지 소유주의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제국 영지의 중심 거점으로서의 헨치르 흐니치

헨치르 흐니치 유적은 서기 1세기 말부터 시작된 긴 로마 시대 점유 역사를 지닌 농촌 정착지로서, 출토 비문 자료가 명확히 보여주듯 제국 영지(imperial estate)의 중심 핵심 거점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3헥타르가 넘는 규모의 정착지로, 묘지와 올리브 압착 공방, 그리고 여러 건축물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이들 시설의 구체적인 기능과 연대 편년은 향후 진행될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