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아우슈비츠 생존자 에르나 데 프리스: 어머니와의 약속을 평생 지킨 홀로코스트 증인

19세의 나이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에르나 데 프리스(Erna de Vries). 그녀는 수십 년간 홀로코스트 시대증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증언해 왔으며, 그 공로로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독일 엠스란트(Emsland) 지역 라텐(Lathen) 출신인 그녀는 2021년 10월 23일, 98번째 생일을 맞은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스실에서의 학살, 총살, 강제노동을 통한 말살 — 오늘날에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이 공포가 에르나 데 프리스에게서 끝난 것은 1945년 1월 27일이었습니다. 이날 소련 붉은 군대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해방했습니다. 그때까지 나치의 죽음의 공장에서는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수감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데 프리스 역시 약 두 달간 아우슈비츠의 지옥을 몸소 겪어야 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옛 에스터베겐(Esterwegen) 강제수용소 부지의 추모비에서 증언 활동을 자주 이어갔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향하다

1943년, 에르나 데 프리스가 어머니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이송될 당시 그녀는 19세였습니다. 어머니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책임감에 그녀는 스스로 짐을 챙겼습니다. 사실 그녀 자신은 추방 명령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몰래 청취한 영국 라디오 보도를 통해 아우슈비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남부에 있던 그 수용소의 현실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감자 껍질을 씹어먹던 나날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이송 자체가 이미 하나의 고문이었습니다. 데 프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가축 수송 마차 안에서 무더위 속 5일을 보내야 했고, 많은 이들이 추방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착지인 아우슈비츠 '램프'(선별 장소)에서도 죽음은 계속됐습니다. 여러 수감자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이 목격됐습니다. 데 프리스는 SS의 '선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수용소에서 2년을 보냈고, 그중 두 달이 아우슈비츠였습니다. 그런데 수용소를 이야기하거나 떠올릴 때면 늘 아우슈비츠만 생각이 납니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선 음식부터 이야기해야겠죠. 처음 며칠 기억나는 건 삶은 감자 껍질뿐이었습니다. 그릇 바닥에는 모래가 깔려 있었고요. 우리는 모두 몹시 수척한 소녀들이었습니다. 씹었던 감자 껍질을 다시 꺼내서라도 조금이라도 더 얻어 먹으려 했습니다."

죄수 번호 50462, '혼혈' 판정으로 라벤스브뤼크 여성 수용소로

나치의 낙인: 아우슈비츠에서 에르나 데 프리스는 팔에 죄수 번호를 문신으로 새겨야 했습니다. 그녀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죄수 50462번'이 되었습니다. 약 3개월 후, 격렬한 노동과 열악한 위생 상태로 심하게 앓은 그녀는 죽음의 수용소로 분류됩니다. 배급은 끊겼고, 그녀는 가스실 앞에서 알몸으로 웅크린 채 안뜰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소원은 단 하나, 다시 태양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번호가 불려졌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이는 대개 가스실로 향하는 죽음을 의미했지만, 그녀에게는 구원의 소리였습니다. 아버지가 기독교인이었던 탓에 나치는 그녀를 '혼혈(Mischling)'로 분류했고, 덕분에 그녀는 절멸 수용소가 아닌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여성 강제수용소로 이송될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전쟁 말기의 강제노동과 이른바 '죽음의 행진'을 견뎌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다시는 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나치의 손에 살해되었습니다.

"당신은 살아남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것"

아우슈비츠에서 헤어질 때, 어머니는 딸에게 한 가지 약속을 남겼습니다. "당신은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게 될 것입니다." 에르나 데 프리스는 이 과제를 평생 진지하게 수행했습니다. 1998년부터 그녀는 시대증인으로서 학교와 강연회에서 정기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증언했습니다. 2016년 2월에는 92세의 나이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전직 경비원 재판에서 증인으로 데트몰트(Detmold) 법정에 섰습니다.

에르나 데 프리스의 별세, "커다란 상실"

에르나 데 프리스의 마지막 공개 석상은 2020년 2월, 벤트하임(Bentheim) 지역 엘리히하임 학교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라텐 출신의 그녀는 2021년 10월 23일, 98세 생일을 맞은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스나브뤼크 유대 공동체 회장 미하엘 그륀베르크(Michael Grünberg)는 NDR 니더작센 방송에 "그녀의 별세는 유족뿐만 아니라 오스나브뤼크 유대 공동체에게도 커다란 상실"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