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월터 켐포스키(Walter Kempowski) — 20세기 독일 현대사를 기록한 문학 연대기 작가

수십 년간 가장 널리 읽힌 독일 현대 작가 중 한 명이자, 20세기 독일 역사를 문학으로 기록한 위대한 연대기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이 바로 월터 켐포스키(Walter Kempowski)입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그의 90번째 생일을 기념해 2019년 4월 29일 고향 로스토크에서 열린 '켐포스키 데이즈(Kempowski Days 2019)'의 표어는 "나는 아카이브가 되고 싶다"였습니다. 로스토크의 작가이자 명예 시민이었던 그는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기·편지·각종 문서를 콜라주 형식으로 압축한 10권짜리 대작 《에콜로트(Das Echolot)》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마을학교 교사에서 작가로

월터 켐포스키는 1929년 4월 29일 로스토크에서 선주(船主)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3년 후 그는 산업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바우첸(Bautzen)의 동독 교도소에 8년간 수감되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서부로 건너간 그는 괴팅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고, 니더작센에서 마을학교 교사로 20년을 일한 뒤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타델뢰저 운트 볼프(Tadellöser und Wolff)》,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Uns geht's ja noch gut)》 같은 가족소설과 《독일 연대기(Deutsche Chronik)》가 꼽힙니다. 대작 《에콜로트》를 통해 해외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으며, 마지막 저서 《모든 것은 헛되이(Alles umsonst)》는 2006년 출간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1945년 전쟁의 겨울, 적군에게 점령된 동프로이센에서 벌어진 독일인들의 극적인 탈출을 다룹니다.

그의 소설 《타델뢰저 운트 볼프》는 1975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1990년에는 켐포스키가 직접 로스토크의 촬영 배경지들을 찾기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천, 일기

켐포스키는 작품 속에서 전체주의적 폭력과 이데올로기를 반복적으로 다루며, 제3제국 시절부터 전쟁의 혼란, 그리고 전후 소련 점령군에 의해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투옥되기까지 자신의 삶의 굴곡을 고스란히 그려냈습니다.

그의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원천은 일기였습니다. 1945년부터 꾸준히 보관해 온 자신의 일기는 물론, 1980년대부터 수집한 타인의 기록과 메모까지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비평가들은 그를 전후 독일 부르주아 한 세대 전체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했습니다.

수많은 수상 경력

켐포스키는 폭넓은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홉 권의 연대기 소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칭 반공주의자였던 그에게 그에 상응하는 문단의 평가가 즉시 따라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에콜로트》 전쟁 연대기가 출간되면서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그는 수많은 상의 영광을 안게 됩니다.

2005년 10월에는 로스토크에서 쌓은 평생의 업적을 기려 한스 에리히 노자크상(Hans Erich Nossack Preis)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문학상(1994), 독일 연방 공로십자훈장(1996), 니더작센주 공로훈장(2004)을 수상했으며, 2005년에는 토마스 만상(Thomas Mann Prize)의 영예도 안았습니다.

75번째 생일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헌팅턴의 주니아타 칼리지(Juniata College)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5년 그의 작가 아카이브를 인수한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는 '켐포스키 전기'라는 제목으로 그의 개인 소장품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병중이라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아내에 따르면 이 전시회는 "그의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합니다. 켐포스키는 아들 카를 프리드리히(Karl Friedrich)가 개막식에서 낭독한 축사를 통해 "내 작품에 부여된 의미에 놀랐고, 이번 전시가 실현되기까지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이 큰 보상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1994년 로스토크 명예 시민으로 추대된 바 있습니다.

투병 중에도 멈추지 않은 글쓰기

월터 켐포스키는 오랜 투병 끝에 2007년 10월 5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대장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마는 끝까지 그의 집필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새 책을 계속 써 내려갔고, 오후에는 브레멘 근교 나르툼(Nartum)의 자택에서 사람들을 문학 모임으로 초대하곤 했습니다.

며칠 뒤인 10월 8일, 작가는 로텐부르크/뷔메(Rotenburg/Wümme) 지역의 묘지에 조용히 잠들었습니다. 출판사 알브레히트 크나우스(Albrecht Knaus)의 대변인 수잔네 클룸프(Susanne Klumpp)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만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켐포스키가 아내와 함께 살았던 나르툼의 '하우스 크리엔후프(Haus Kreienhoop)'는 특정 날짜에 문학·문화 행사장으로 개방되며, 사전 요청 시 방문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