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히아(Dyhia) 또는 담야(Damya)로 알려진 카히나(Kahina)는 7세기의 전사 여왕으로, 역사상 최초의 여성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카히나'라는 이름은 아랍어로 '점이나 마법을 행하는 자'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에 맞선 저항

디히아, 즉 카히나에 관한 기록은 후대 저술가들의 글과 구전 전통을 제외하고는 많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카히나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누미디아(오늘날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일대) 출신 베르베르 부족인 제라와족의 족장 타베타 이븐 티판의 딸로, 제라와족은 알제리 동부의 오레스 산맥 지역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당시 제라와족은 기독교 또는 유대교 신앙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레스 지방의 베르베르족인 샤위아족 사이에서는 그녀의 본래 이름이 '디히아 타드무트', 즉 '아름다운 가젤'이라 불렸으며, 오늘날에는 '카히나' 혹은 '옘마 엘 카히나(어머니 카히나)'라는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는 후계자로 선출되었거나 임명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카히나가 살던 시대는 우마이야 왕조가 북아프리카를 정복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베르베르족은 마그레브 무슬림 정복에 맞선 저항의 지도자였던 쿠사일라의 깃발 아래 이에 맞섰습니다. 686년 쿠사일라가 사막하자, 카히나가 그 뒤를 이어 저항 운동의 지도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녀는 북아프리카의 수많은 부족을 통합해 우마이야 왕조에 대항했고, 두 차례에 걸쳐 군사적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낙타 전투
첫 번째 전투는 메스키아나에서 벌어졌습니다. 카히나는 밤을 틈타 군대를 산속에 숨겨 적군을 매복 공격했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베르베르 전사들이 낙타 다리 사이로 화살을 쏘았다는 일화 덕분에 이 전투는 훗날 '낙타 전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전투는 695년 타바르카에서 치러졌습니다. 이러한 연승에 힘입어 카히나는 약 5년간 이프리키야(튀니지, 알제리 동부, 리비아 서부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왕국)를 다스렸습니다.
우마이야 왕조가 반격에 나서자, 카히나는 적이 점령한 영토에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하도록 초토화 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정책은 오히려 백민들의 상당 부분을 소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693년(일부 사료에서는 701~703년으로 추정), 카히나는 하산 이븐 누만이 이끄는 우마이야 군대와의 최후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그녀는 참수형으로 처형되었고, 하산은 베르베르족에게 12,000명의 기병을 요구해 그 지휘권을 카히나의 두 아들에게 맡겼습니다. 이프란과 예즈디아는 오레스 지방의 통치권도 함께 위임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