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남부에 위치한 고대 아랍 왕국 케다르(Kedar)의 여왕 삼시(Samsi)는 당대 최강의 제국이었던 아시리아에 과감히 반기를 든 용맹하고 강력한 통치자였습니다.
'아랍의 여왕'이라 불리던 케다르 왕국
삼시의 전임자인 자비비(Zabibi)는 기원전 738년부터 733년까지 5년간 케다르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아시리아 왕 티글라트-필라세르 3세(Tiglath-Pileser III)의 속국이었으며, 아시리아 왕의 연대기에는 조공을 바친 군주들의 명단 속에 '아랍의 여왕(Queen of the Arabs)'이라는 칭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733년, 자비비는 후계자인 삼시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났습니다. 케다르 왕국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 삼시 역시 '아랍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이어받았으며,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아시리아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봉신으로서 복속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732년, 아시리아 왕은 일부 속국에 대한 지배 방식을 변경하기로 결정합니다. 현지 군주들을 폐위시키고 아시리아 총독으로 교체한 것입니다. 삼시가 이 정책의 직접적인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녀는 다마스쿠스의 라키아누(Rakhianu)와 손잡고 티글라트-필라세르 3세에 대한 반란에 가담했습니다.
티글라트-필라세르 3세에 대한 반란과 패배
얼마 전 우라르투(Urartu) 왕국과 에돔(Edom) 왕국을 정복한 아시리아 왕은 이제 반란군 진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합니다. 아시리아 연대기에 따르면, 티글라트-필라세르 3세는 사쿠우리(Mount Sa-qu-ur-ri, 현재 위치는 확인되지 않음) 산 인근에서 삼시를 격파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아시리아 왕은 포로와 막대한 전쟁 배상품을 거두어 갔지만, 여왕은 간신히 탈출하여 사막 깊숙이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삼시의 자유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곧바로 포로로 잡혀 아시리아 왕에게 넘겨진 그녀는 금, 은, 낙타, 향료로 이루어진 막중한 공물을 조건으로 왕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티글라트-필라세르 3세는 스스로 격파한 통치자를 오히려 복위시켰는데, 이는 케다르 왕국을 관통하는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무역로를 유지하고 보호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삼시는 이후 약 20년간 케다르 왕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했습니다. 기원전 700년경, 또 다른 여왕인 야티에(Yatie)가 그녀의 뒤를 이으며 케다르의 여왕 전통은 계승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