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강가 왕국의 여왕 라니 벨루 나치야르(Rani Velu Nachiyar, 1730~1796)는 영국 식민 세력에 맞서 직접 무기를 들었으며, '용감한 여성'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영국의 식민 지배에 무력으로 저항한 인도 최초의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됩니다.

군주의 딸이자 군주의 아내
라마드 왕국을 다스리던 라니 사칸디무타탈과 라자 첼라무투 비자야라구나타 세투파티의 유일한 자녀로, 벨루 나치야르는 1730년 1월 3일 인도 남부 라마나타푸람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그녀를 남성 상속인처럼 키웠는데, 덕분에 공주는 승마, 활쏘기, 무술, 무기 다루기를 익혔고 우르두어, 영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성장한 벨루 나치야르는 시바강가 왕국의 국왕 무투 바두가나타 페리아부다야 데바르와 결혼하여 스스로 여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벨라치(Vellacci)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팽창
당시 인도는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의 정복과 진출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1619년 이후에는 수라트, 마드라스, 봄베이, 칼커타에 영국의 거점과 무역소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18세기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국내 치안 불안을 핑계 삼아 점점 더 확장주의적인 노선으로 선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757년 영국은 벵골을 장악했고, 이후 점차 인도 내륙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습니다. 1772년, 카르나틱의 나와브와 손을 잡은 영국 동인도 회사는 시바강가를 공격해 점령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왕 무투 바두가나타 페리아부다야 데바르는 영국 군인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고, 라니 벨루 나치야르는 간신히 어린 딸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왕국의 재정복
여왕과 공주는 미소르 번왕국으로 피신하여 하이다르 알리 술탄의 보호 아래 몸을 의탁했습니다. 라니 벨루 나치야르는 인내심 있고 치밀하게 반격을 준비했습니다. 그녀는 술탄과의 동맹은 물론, 신분과 계층을 불문하고 영국 식민 제국에 맞서던 반군들—페리아 마루두와 그의 형제 친나 마루두 형제—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지지 세력과 함께 그녀는 자신만의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1780년, 하이다르 알리 술탄이 대군을 이끌고 카르나틱을 공격하는 동안, 라니 벨루 나치야르와 마루두 형제는 시바강가 탈환 작전에 나섰습니다. 영국군의 탄약 저장소 위치를 파악한 그녀는 물자를 파괴하고 적에게 결정적 타격을 입히기 위한 자폭 공격을 성공적으로 지휘했습니다. 그녀의 군사 전략과 전술은 빛을 발했고, 마침내 왕국의 통치권을 되찾은 그녀는 딸 벨라치를 왕위 계승자로 임명했습니다.
이 승리 이후 라니 벨루 나치야르는 약 10년간 시바강가를 다스렸으며, 이후 왕위를 벨라치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벨라치는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왕위에 머물렀습니다. 라니 벨루 나치야르는 1796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인은 심장 문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