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프의 딸, 시트 알물크의 탄생
시트 알물크(Sitt al-Mulk)는 970년 9월, 튀니지의 카이로완 인근 알만수리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제4대 파티미드 칼리프 알무이즈 리딘 알라의 손녀이자, 왕자 니자르(훗날 알아지즈 빌라 칼리프가 됨)와 노예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었다. 그녀가 태어날 무렵, 알무이즈의 주도하에 파티미드 칼리프국은 이집트를 정복하고 알카히라(오늘날의 카이로)를 건설해 수도를 이전했다. 시트 알물크는 세 살 반 때 가족과 함께 이 새로운 수도로 이주했다. 975년 알무이즈가 사망하자, 그녀의 아버지 니자르가 아부 만수르 니자르 알아지즈 빌라라는 이름으로 제5대 칼리프에 올랐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공주, 정치의 중심으로
총명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전해지는 시트 알물크는 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알아지즈는 그녀에게 호위병을 붙여주고 궁전을 지어주는가 하면, 그녀의 의견을 경청하며 정치적 조언자로 삼았다. 당시 파티미드 왕조의 공주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에서 배제된 채 자선 사업이나 공공·종교 건축물 건립에 전념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시트 알물크는 이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궁정의 정치 무대에 깊숙이 관여하며 아버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고, 989년에는 실각했던 재상 이븐 나스투루스가 아버지의 신임을 회복하도록 돕기도 했다.
권력 장악의 첫 번째 시도와 좌절
985년, 시트 알물크가 열네 살 되던 해 기독교인 어머니에게서 이복동생 알만수르가 태어났다. 다른 파티미드 공주들과 마찬가지로 왕위 계승 다툼을 피하기 위해, 혹은 정치적 행보에 집중하기 위해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제국의 정치사에 헌신했다.
약 20년간 재위한 칼리프 알아지즈가 996년 10월 사망하자, 시트 알물크는 자신을 지지하는 궁정 인사들과 근위병을 대동하고 황급히 알카히라의 칼리프 궁전으로 향했다. 그녀는 왕위 계승에 개입해 사촌을 옹립하려 시도했으나, 궁정 내시 바르자와운의 저지로 실패했다. 결국 열한 살에 불과한 이복동생 알만수르가 '알하킴 비아므르 알라'라는 이름으로 제6대 칼리프에 올랐다.
공포 정치의 시대, 알하킴의 폭정
어린 칼리프는 섭정 하에 통치를 시작했다. 시트 알물크는 이복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많은 선물을 바치며 아버지 때와 마찬가지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000년, 섭정 바르자와운이 암살되고 알하킴이 친정을 시작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칼리프는 이복누이에게 이집트와 시리아의 토지 및 세수입을 하사했고, 그녀는 독자적인 행정 기구를 꾸려 이를 관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화해는 오래가지 못했다. 알하킴은 점차 가혹한 법령을 공포하며 짐미(비무슬림 보호민)를 탄압했고, 귀족과 고관, 일반 백성을 가리지 않는 숙청과 처형이 잇따랐다. 시트 알물크와 알하킴 사이의 불신이 깊어지자, 칼리프는 그녀의 지지자들까지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고문, 살인, 반란 진압... 제6대 칼리프의 치세는 말 그대로 '공포 정치' 그 자체였다.
이 광기는 알하킴의 사생활에도 드리웠다. 1013년, 사료에 따르면 그는 후궁의 여성들에게 극심한 폭력을 휘둘렀다. 시트 알물크는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알하킴의 아들 아부 알하산을 낳은 움 알왈라드(주인의 아들을 낳은 노예 여인) 루카이야와 그 아들을 자신의 보호 아래 두고 직접 양육했다. 이에 반발한 알하킴은 자신의 아들 대신 사촌 압드 알라힘 이븐 일야스(다마스쿠스 총독)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섭정 시트 알물크, 제국의 질서를 바로잡다
1021년 2월, 알하킴이 야간 산책 중 돌연 실종됐다. 닷새 뒤 그의 옷이 칼에 찔린 채 발견됐다. 중세 사료 중 반(反)파티미드 성향의 연대기 작가는 시트 알물크가 암살을 지시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현재 널리 신뢰받지 못한다. 다른 동시대 사료들은 그녀의 개입을 부정하고 있다.
시트 알물크는 자신이 보호하던 조카 아부 알하산을 왕위에 올리기로 결심했다. 선왕이 지명한 후계자 다마스쿠스 총독을 이집트로 불러들여 투옥했고, 그는 옥중에서 사망했다. 이후 시트 알물크는 조카를 제7대 칼리프 '알자히르'로 즉위시키고, '공주-고모(알사이이다 알암마)'라는 칭호로 섭정에 나섰다.
섭정으로서 시트 알물크는 이복동생의 공포 정치로 무너진 파티미드 제국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때로는 정치적 암살 등 강경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알하킴이 지지자들에게 뿌린 막대한 은전을 취소하고 폐지했던 세금을 복원해 재정을 바로잡았다. 그녀는 이복동생의 정책을 전방위로 뒤집었다. 억압받던 권리와 자유를 회복시켰고, 특히 여성과 짐미의 권리 신장에 힘썼다. 종교적 관용을 회복해 강제 개종자들이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 있게 했으며, 여성의 외출 자유도 보장했다.
죽음과 그 후의 위기
시트 알물크는 1023년 2월, 이질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사후, 파티미드 제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위기에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