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독일 최초의 여류 작가, 수녀 흐로츠비타 데 간더샤임(Hrotsvita de Gandersheim)

작센 출신 수녀 흐로츠비타 데 간더샤임(Hrotsvita de Gandersheim, 930~935년경 출생 – 973년 이후 사망)은 라틴어로 영적·역사적 저술을 남겼으며, 중세에 집필된 보기 드문 희곡 6편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녀는 게르만 최초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교육받은 아이

독일 최초의 여류 작가, 수녀 흐로츠비타 데 간더샤임(Hrotsvita de Gandersheim)

흐로츠비타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으며, 주요 자료는 그녀 자신의 저술입니다. 출생 시기와 관련해 그녀는 역사 시가 『간더샤임 수도원의 기원에 관한 노래(Carmen de Primordiis Coenobii Gandersheimensis)』에서 912년에 사망한 작센 공작 오토보다 훨씬 후에 태어났다고 언급합니다. 이에 따라 그녀의 출생은 930년에서 935년 사이로 추정되며, 작센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게르만 왕국 내 작센 공국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교양 있고 학식이 깊었던 흐로츠비타는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는 독일 왕 오토의 동생 브루노(Brunon) 곁에서 함께 교육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의 딸로서 949년 간더샤임 수도원의 원장이 된 게르베르게(Gerberge)의 제자였습니다. 당시 간더샤임 수도원은 여행자 숙소, 병원, 도서관, 학교를 모두 갖춘 지식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귀족 가문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아이들을 이곳에 보냈습니다. 전성기에는 사법권 행사, 군대 보유, 화폐 주조까지 허가받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역사 기록가

흐로츠비타가 간더샤임 수도원에 입회한 정확한 시기 역시 출생 시기만큼이나 불분명합니다. 그녀의 저술은 즉각적으로 수녀 서원을 하지 않고 세속 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했음을 시사합니다. 어쨌든 흐로츠비타는 950~960년경 첫 문학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게르베르게 원장의 요청으로 집필한 『오토왕 사적(Gesta Oddonis)』은 919년 이후 오토 왕조 독일 국왕들의 통치를 다룬 매우 중요한 사료입니다.

흐로츠비타는 또한 수도원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도 힘썼습니다. 간더샤임 수도원은 852년 작센 백작 리우돌프(Liudolf)와 그의 아내 오다(Oda)가 로마 순례를 마친 뒤 세운 곳입니다. 약 600행의 시로 이루어진 『수도원 기원사(Primordia coenobii Gandeshemensis)』는 인근 경쟁 수도원 퀘들린부르크(Quedlinburg)의 부상에 맞서 자신들의 수도원을 빛내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한편 그녀는 로마의 성 아그네스, 코르도바의 성 펠라기우스, 파리의 성 드니 등 성인전(聖人傳)도 지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저작을 세 권으로 나누어, 성인전들을 『전설집(Book of Legends)』으로 엮어 『첫째 책(Liber Primus)』에 포함시켰습니다.

희곡과 희극

독일 최초의 여류 작가, 수녀 흐로츠비타 데 간더샤임(Hrotsvita de Gandersheim)

흐로츠비타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바로 희곡입니다. 『갈리카누스(Gallicanus)』, 『둘키티우스(Dulcitius)』, 『칼리마쿠스(Callimachus)』, 『아브라함(Abraham)』, 『파프누티우스(Paphnutius)』, 『사피엔티아(Sapientia)』 등이 그것입니다. 수도원에서 공부하며 접한 고대 로마 극작가 테렌티우스(Terence)에게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고대 이후 거의 잊혀졌던 극 문학 장르를 스스로의 것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매력적인 여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사랑과 순결, 기적과 신의 개입을 다루면서도, 때로는 유머러스하고 놀랄 만큼 현대적인 어조로 서술했습니다.

흐로츠비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작품이 남성의 작품보다 덜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 스스로도 '여성은 글쓰기에 남성보다 적합하지 않다'는 당대의 통념을 의심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작가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이 신에게 영감을 받은 특별한 예외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연약함을 내려놓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남성적인 힘을 불러일으킨다"고 밝혔습니다.

흐로츠비타가 세상을 떠난 정확한 시기와 상황 역시 출생과 마찬가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늦어도 973년 이후에는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중세에 잊혔다가 1494년경 재발견되어 재출판되었습니다. 게르만 최초의 작가로 평가받는 그녀는 중세 시대의 드문 저자 중 한 사람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