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테우타, 일리리아의 여왕과 해적의 여왕

기원전 3세기 일리리아의 여왕 테우타는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한 함대 중 하나를 지휘했습니다. 그녀의 해적 행위는 결국 로마와의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리리아의 아그론 왕비

테우타, 일리리아의 여왕과 해적의 여왕

"일리리아의 왕 아그론은 플레우라토스의 아들로, 선대 왕들보다 더 많은 육군과 해군을 보유했다." — 폴리비오스, 『세계사』 제2권

그리스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폴리비오스의 『역사』를 통해 테우타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폴리비오스는 당대의 성차별적 시각이 담긴 연대기로 그녀를 묘사합니다. 테우타는 일리리아 부족 아르디아이의 통치자 아그론의 두 번째 아내였습니다. 발칸 반도에 정착한 아르디아이족은 스코드라(현 알바니아 슈코더르)를 수도로 삼고, 아드리아 해안의 리존(현 몬테네그로 코토르만의 리산) 등 요새를 보유했습니다.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역사가 스트라본에 따르면, 아르디아이족은 아우타리아타이족, 다르다니족과 함께 가장 강력한 일리리아 부족이었습니다. 기원전 250년경부터 기원전 231/230년까지 재위한 아그론은 부족의 세력을 키우고 영토와 권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는 그리스의 주요 강국 아이톨리아를 격파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왕국은 일리리아의 상당 부분을 포함했습니다(정확한 국경은 불확실).

섭정과 해적의 여왕

"왕국은 그의 아내 테우타의 수중으로 넘어갔고, 그녀는 국정을 측근들에게 맡겼다. 이 여왕은 자기 성별의 경박한 습성을 따라, 신민들이 거둔 승리에만 마음을 쏟았다. 이웃 나라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처음에는 신민들의 해적질을 방치했다. 그러다 함대를 정비하고 최초 병력만큼 많은 군대를 모아, 장군들을 통해 곳곳에서 갖가지 적대 행위를 자행했다." — 폴리비오스, 『세계사』 제2권

아그론이 죽자, 첫째 부인 소생인 핀네스가 왕위를 계승하고 테우타가 섭정이 되었습니다. 최근 일리리아의 연승으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게 된 그녀는 남편의 업적을 잇고자 했습니다. 그녀의 군대는 연안 도시들을 급습한 뒤 엘리스와 메세니아(현 그리스)로 퇴각했고, 뒤라키움과 포이니케를 점령했다가 연합군의 도착으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일리리아인은 육지뿐 아니라 바다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로마 상선을 나포·약탈했습니다. 이들의 해적 행위는 아드리아 해의 교역과 해운을 마비시켰고, 테우타는 이오니아 해까지 함대 작전을 확대했습니다. 선박을 건조해 지중해 최강 함대 중 하나를 갖춘 그녀는 그리스-이탈리아 간 항로의 선박을 나포하고 로마 시민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로마 공화국은 자국 재산과 시민을 보호하고 아드리아 해의 제해권을 되찾기 위해 행동에 나섰습니다.

테우타, 일리리아의 여왕과 해적의 여왕

제1차 일리리아 전쟁

"그때 로마 사절단이 도착했다. 알현 자리에서 그들은 일리리아 해적들에게 입은 상인들의 피해를 호소했다. (…) 말을 마치자 테우타는 '내 왕국 전체에 대해 로마가 불평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겠다. 하지만 일리리아의 왕들이 신민들의 사적 이득을 위한 약탈을 금지하는 관례는 없다'고 답했다. 이 말에 최연소 사절의 분노가 폭발했고, 그는 '개인의 피해를 공동으로 복수하는 것이 로마의 관례이며, 신들의 가호로 곧 일리리아 왕들의 관례를 고쳐놓겠다'고 경고했다. 여왕은 이 답변을 '여자답게', 즉 매우 나쁘게 받아들였다." — 폴리비오스, 『세계사』 제2권

기원전 230년, 로마 원로원은 스코드라에 두 사절을 파견해 테우타에게 해적 행위 중단과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여왕을 모욕하자, 테우타는 그들을 체포하고 배를 나포했으며 모욕한 자를 처형했습니다. 로마는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했고, 이듬해 백인대 회민회가 전쟁을 의결하면서 제1차 일리리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테우타, 일리리아의 여왕과 해적의 여왕

200척의 함선에 2만 보병과 2천 기병을 태운 로마군은 코르키라(현 코르푸)와 에피다므노스(현 알바니아 뒤러스)로 향했습니다. 에피로테스와 아카르난과 동맹한 테우타는 원정군을 보냈으나 에피다므노스에서 패했고, 코르키라만 점령하는 데 그쳤습니다. 코르키라 수비대장 파로스의 데메트리우스는 로마군 포위 끝에 항복하고 로마의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로마군은 마침내 스코드라를 포위했고, 패배한 테우타는 리존 성벽 뒤로 피신해 강화를 청했습니다.

굴욕적인 강화 조약

"봄이 오자 테우타의 사절들이 로마에 와 여왕의 이름으로 강화 조건을 제시했다: 부과된 공납을 바치겠다; 몇 곳을 제외하고 일리리아 전역을 양도하겠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에게 특히 중요한 조항으로, 리시스 강 이남에서는 무장하지 않은 소형 쾌속정 두 척만 띄울 수 있다." — 폴리비오스, 『세계사』 제2권

로마는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가혹한 강화 조건을 강요했습니다. 테우타는 정복한 그리스·달마티아 도시들을 해방하고 연공을 바치며, 활동 해역을 대폭 축소당해야 했습니다. 이 조건을 수용한 테우타는 쇠약해진 왕국의 수장에 남았으나, 그 후의 행적은 기록에 없습니다.

"로마인은 해적질 때문에 이 민족을 바다에서 내륙으로 몰아넣고 경작을 강요했다. 하지만 땅이 너무 거칠고 척박해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어려웠고, 이 민족은 멸망해 거의 자취를 감췄다." — 스트라본, 제7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