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해적에서 군인으로: 여전사 루이즈 앙토니니의 파란만장한 인생

프랑스의 여성 사략선원 루이즈 앙토니니(1771~1861)는 남장을 하고 바다에 나가 해적 활동을 벌였다가, 이후 육군에 입대해 하사 계급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거의 모든 전투에 몸소 참전했던 그녀의 삶은 실화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극적이고 기묘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남자 이름 '루이'로 불린 사략선원

해적에서 군인으로: 여전사 루이즈 앙토니니의 파란만장한 인생

1771년 5월 30일, 코르시카 섬의 항구 도시 아작시오에서 태어난 루이즈 앙토니니는 코르시카의 지도자이자 제독이었던 파스칼 파올리(Pascal Paoli) 휘하에서 복무했던 장교의 딸이었다. 유년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전해질 뿐이다.

루이즈는 남장을 하고 '루이 앙토니니(Louis Antonini)'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브리그형 2돛 범선 르방슈(Revanche)호의 선원으로 취직했다. 1790년 5월 배가 난파하자 프리깃함 코르넬리(Cornelie)호로 옮겨 탔고, 이 배는 서인도제도로 향하는 항해에 나섰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미주 지역의 섬들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루이즈는 프랑스 측 사략선(코르세르) 선원으로서 다른 선원들처럼 전투에 직접 뛰어들었고, 점차 용맹한 전사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육군 입대, 하사관까지의 승진

1802년 레상트(Les Saintes) 해전에서 부상을 입고 영국군의 포로가 된 루이즈는 잉글랜드의 플리머스로 끌려가 부양 선착장(폰툰) 위의 수용소에 18개월 동안 갇혀 지내야 했다. 포로 교환 과정에서 석방되었거나, 혹은 여성이라는 정체가 발각되면서 풀려났다고 알려져 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제70보병연대에 자원 입대했다.

사략선 시절과 마찬가지로 루이즈는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이등병으로 시작해 분대장, 그리고 하사로 차례차례 승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1808년 8월에는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롤리사(Roliça) 전투에 참전했으나, 총격에 맞아 머리에 중상을 입고 말았다.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군 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했던 말년

군에서 나온 루이즈 앙토니니는 안정적인 생계 수단 없이 불안정한 삶을 이어간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의 구체적인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녀는 브레스트의 벽돌 공장에서 약 20년간 일했고, 인생의 마지막은 낭트에서 보냈다. 1861년 6월, 90세를 일구고 낭트의 오텔디외(Hôtel-Dieu)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참고 자료 및 관련 링크

루이즈 앙토니니 위키피디아 페이지
로베르 드 라 크루아(Robert De La Croix), 해적의 역사(Histoire de la Piraterie)
AUBIN G., BERNARD M., BRICHAUX Ch., Sailors and corsairs of the Nantes region, Academic Society of Nantes, 1955.
GAUTIER Georges, Three women sailors, Notebook of the Salorges,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