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앤절루(본명 마거릿 존슨, 1928~2014)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배우, 인권운동가로, 미국 흑인 민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입니다.
(주의: 성폭력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난의 어린 시절
1928년 4월 4일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마거릿 존슨은 간호사였던 어머니 비비언 백스터 존슨과 문지기였던 아버지 베일리 존슨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자녀였습니다. 오빠 베일리 주니어는 동생을 'My Sister(내 누이)'에서 따온 '마야'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마야와 오빠가 어렸을 때 부모는 갈라섰고, 두 아이는 아칸소에 사는 할머니 애니 헨더슨에게 맡겨져 자랐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아버지 베일리는 아무런 예고 없이 아이들을 데리러 나타나 세인트루이스의 어머니 곁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동거인 프리먼이라는 남자는 겨우 여덟 살이던 어린 마야를 성폭행합니다. 마야가 오빠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가족 전체가 알게 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은 프리먼은 단 하루만 감옥에 있다가 풀려납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는 살해당했는데, 범인은 마야의 삼촌 중 한 명으로 추정됩니다. 자신이 프리먼의 이름을 입에 담았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고 믿은 마야는 오랜 침묵의 시간에 들어가 말문을 닫아버립니다.
침묵에서 벗어나다
마야와 오빠는 다시 할머니에게 돌려보내집니다. 그곳에서 소녀는 가족의 친구이기도 한 한 명의 교사를 만나 문학을 접하게 되었고, 다시 말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이 시기 마야는 책과 독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뛰어난 기억력과 경청 능력, 집중력을 발달시켰습니다. 하지만 침묵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거의 5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열네 살이 되던 해, 마야와 오빠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마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면전차 운전사로 일하며 1945년에 졸업했고, 열일곱 살에는 아들 클라이드를 낳았습니다.
'마야 앤절루'라는 예명
1951년, 마야는 어머니의 반대와 당시 혼혈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출신 전기 기사이자 음악가를 꿈꾸던 토시 앤젤로스와 결혼합니다. 그녀는 현대무용 수업에 이어 아프리카 무용까지 배웠고, 무용가들과 안무가들과 교류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행사에서 공연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결혼 3년 만에 끝난 후, 마야는 클럽에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일자리를 얻었고, 이때 '마야 앤절루'라는 예명을 사용하게 됩니다. 1954년부터 1955년까지는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의 유럽 순회 공연에 참여했으며, 이 시기에 여러 외국어도 익혔습니다. 1957년에는 첫 앨범 《미스 칼립소(Miss Calypso)》를 녹음했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통일 기구(OAAU)
1959년, 마야 앤절루는 소설가 존 올리버 킬렌스를 만났고, 그의 권유로 뉴욕으로 이주해 글쓰기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모임인 할렘 작가 길드(Harlem Writers Guild)에 가입하여 자서전, 시나리오, 시, 에세이 등을 집필했고, 그중 일부는 1969년에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1960년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만나 그의 민권운동 조직인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동시에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에도 몸담았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활동가 부숨지 메이크(Vusumzi Make)와 함께 잠시 카이로에 머물렀다가 가나 아크라로 이주하여 언론인으로 일하고 연극 무대에도 섰습니다. 바로 아크라에서 1960년대 초반 말콤 X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1965년, 그녀는 말콤 X가 새롭게 세우려는 민권운동 조직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통일 기구(Organization of Afro-American Unity)를 만드는 것을 돕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오지만, 말콤 X는 곧 암살당합니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암살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충격에 빠진 마야는 연극 공연을 계속하면서도 다시금 글쓰기에 몰두하게 됩니다.
《새장 속의 새는 왜 노래하는가》
1969년, 첫 자서전 《새장 속의 새는 왜 노래하는가(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는 그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마야 앤절루는 이 책에서 오빠와 함께 처음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던 순간부터 스스로 어머니가 될 때까지의 청소년기를 회고합니다. 1972년에는 영화 《조지아, 조지아(Georgia, Georgia)》가 개봉되었는데, 이는 흑인 여성이 각본을 쓴 최초의 영화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매우 다작의 예술적 시기를 보냅니다. 영화나 가수를 위한 음악 작곡, 기사와 단편소설, 시나리오, 시, 자서전 집필, 연극 제작, 대학 강의, 배우 활동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전 세계 여러 대학에서 수여한 30여 개의 명예 학위를 포함해 수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1970년대 말에는 오프라 윈프리를 만나 절친이자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1981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의 교수직을 수락하여 철학, 윤리학, 신학, 연극, 글쓰기를 가르쳤으며, 동시에 시, 영화, 음악 분야의 예술 활동도 계속 이어갔습니다.
2008년, 마야는 대선을 앞둔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고, 버락 오바마가 경선에서 승리하자 그를 지지했습니다. 2013년에는 일곱 번째 자서전 《맘 & 미 & 맘(Mom & Me & Mom)》을 출간했습니다. 시간순으로 각 시기를 다룬 앞선 여섯 권의 자서전과 달리, 이 작품은 어머니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야 앤절루는 2014년 5월 28일,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마야 앤절루는 미국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그녀의 책들은 학교 교육 과정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 자료
마야 앤절루 위키피디아 페이지
마야 앤절루 영문 위키피디아 문서 (더 상세함)
마야 앤절루의 저작 목록 (영문)
Caged Bird Leg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