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일본 전통예능 '가부키'의 창시자, 이즈모노 오쿠니

일본의 예술가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国, 약 1572~1613?)는 웅장하고 화려한 공연 양식으로 유명한 일본 전통 연극 장르인 '가부키(歌舞伎)'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무녀(巫女)로서의 시작

오쿠니에 대한 기록은 당대와 후대의 회화, 초상화, 귀족들의 일기 등 여러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많지 않습니다.

1572년경, 일본 열도가 통일되어 가던 격변의 시기에 태어난 오쿠니는 일본 서부 마쓰에(松江)의 대장장이 나카무라 사네몬의 딸로 전해집니다. 그녀는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대국주신(大國主神) 오크니누시노미코토를 모시는 이즈모 신궁에서 봉직했을 것으로 보이며, 일부 자료에서는 그녀를 신사에 몸바친 무녀(巫女)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관능적인 무희

어린 나이에 오쿠니는 신사의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교토로 파견되어 신성한 노래와 춤을 공연했습니다. 이후 이즈모로 소환되었지만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돈만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춤과 노래를 선보였던 오쿠니는, 원래 불교의 영혼을 달래던 종교 의식 춤에서 민속춤으로 변모한 '넴부쓰 오도리(念仏踊り)'를 독특하게 해석하며 주목받게 됩니다. 특히 그녀의 공연은 관능적인 매력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가부키모노(傾奇者)

1603년, 오쿠니는 교토의 덴만구(天満宮) 신사에서 기념비적인 공연을 열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그녀는 당시 '가부키모노(傾奇者)'라 불리던 방랑자 집단, 특히 주군을 잃고 떠돌던 낭인(浪人)들을 연기하며 찻집 여종업원과 추파를 던지는 장면을 선보였습니다. 연극과 춤이 어우러진 이 공연은 전통적 틀에서 과감히 벗어난 혁신적인 무대였으며, 노(能) 극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같은 시기 오쿠니는 가모가와(鴨川) 강변에 극장을 마련했습니다. 강바닥이 말랐을 때 임시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을 진행했으며, 극단을 꾸리기 위해 춤꾼들을 모집했습니다. 특히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사람들, 매춘부까지 폭넓게 영입했는데, 이들의 파란만장한 출신과 기이한 행동, 자유분방한 분위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들을 다시 '가부키모노'라고 불렀습니다.

여성 가부키의 확산

오쿠니의 극단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았지만, 주된 관객은 평민들이었으며 작품 역시 일상생활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극단이 선보이는 공연은 때때로 소란스럽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생동감 넘치고 아름다우며 다채로운 색채로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공연은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으며, 특히 유곽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새로운 장르는 '오쿠니 가부키(阿国歌舞伎)'로 명명되었고, 오쿠니의 극단처럼 여성이 공연하는 경우에는 '온나 가부키(女歌舞伎)'라고 불렸습니다. 무희들은 여성 역할과 남성 역할을 모두 소화하며 무대를 이끌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오쿠니의 마지막 공연은 1607년 또는 1612년에 열렸다고 합니다. 한 자료는 그녀가 1613년에 사망했다고 전하지만, 다른 자료는 1658년이라는 신뢰도가 낮은 날짜를 언급합니다. 그녀는 1629년,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매춘과의 연루를 이유로 여성의 가부키 공연 참여를 금지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금지령은 19세기 말까지 약 260년간 지속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