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네타 스누크(Mary Neta Snook), 흔히 네타 스누크(Neta Snook, 1896~1991)로 알려진 그녀는 미국의 선구적인 여성 비행사로, 항공 분야에서 사업을 운영한 최초의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행학교를 찾기까지의 험난한 여정
1896년 2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메리 네타 스누크는 친구들 사이에서 '스누키(Snookie)'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남다른 재능과 관심을 보였는데, 불과 네 살 때부터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함께 자동차를 몰고 고향 마을 거리를 누볐다고 전해집니다.
스누크는 프랜시스 샤이머 스쿨(Frances Shimer School)에서 수학해 1912년 졸업했으며, 가족이 아이오와주로 이주한 뒤에는 대학에 진학해 제도와 정비 기술 과목을 공부했습니다.
그녀에게 비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명이었습니다. 당시 등장하던 초창기 비행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읽었고, 하늘을 나는 것을 꿈꾸며 버지니아의 커티스-라이트(Curtiss-Wright) 항공학교에 지원했지만 성별을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했습니다. 이듬해 아이오와의 데이븐포트 비행학교(Davenport Flying School)에 들어가 비행 훈련을 시작했으나, 교장이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학교가 폐쇄되는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던 1917년, 마침내 커티스-라이트 항공학교에 입학이 허가되어 훈련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버려진 캐넥(Canuck) 복엽기를 직접 구입해 부모님 뜰에서 무려 2년에 걸쳐 수리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나는 세상의 그 어떤 남자 비행사보다 대담하게 날 것이다”
1920년, 네타 스누크는 손수 고쳐낸 캐넥 복엽기를 몰고 하늘에 오르며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처음에는 승객 운송 비행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이후 새로 개장한 로스앤젤레스 공항의 강사 겸 관리자로 발탁되어 비행장을 운영한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1921년에는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옵니다. 젊은 아멜리아 이어하트(Amelia Earhart)가 비행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고, 스누크는 그녀의 첫 번째 비행 강사이자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후 스누크는 이어하트와의 인연으로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같은 해 그녀는 남성 선수들과 겨루는 비행 경주에 출전한 최초의 여성이 되어 5위에 오르며, 언론에 “나는 세상의 그 어떤 남자 비행사 못지않게 영리하고 대담하게 날 것이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비행을 접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1922년 빌 서덜런(Bill Southern)과 결혼한 뒤 임신하게 되면서 스누크는 비행에서 물러나 사업체를 매각했습니다. 1937년 아멜리아 이어하트가 실종되자, 그녀는 이어하트와 함께했던 나날들을 회고하는 강연 활동을 펼쳤고 자서전 『나는 아멜리아에게 비행을 가르쳤다(I Taught Amelia To Fly)』를 집필했습니다. 1977년에는 찰스 린드버그의 비행기 복원기 조종에 초청받아 수십 년 만에 다시 조종간을 잡았고, 1981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고령의 현역 비행사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네타 스누크는 1991년 3월 23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업적을 기려 아이오와 항공 명예의 전당(Iowa Aviation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