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학자 앨리스 볼(Alice Augusta Ball, 1892~1916)은 불과 24세로 끝난 짧고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나병(한센병) 치료법을 개발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하와이 대학교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석사 졸업생이기도 했습니다.

빛나는 학업 경력
1892년 7월 24일 시애틀에서 태어난 앨리스 오거스타 볼은 출판업자이자 사진작가, 법률가였던 제임스 프레슬리 볼(James Presley Ball)과 로라 루이즈 하워드 볼 사이의 네 자녀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 제임스 프레슬리 볼 시니어는 다게레오타입(최초의 실용적 사진술)을 익힌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 한 명으로 유명한 사진가였습니다.
1903년 가족은 할아버지의 관절염 완화를 기대하고 기후가 온화한 하와이로 이주했지만, 할아버지는 곧 세상을 떠났고 가족은 1905년 시애틀로 돌아왔습니다.
어린 앨리스는 시애틀 고등학교에 재학하며 과학 과목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910년 졸업 후에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화학을 공부하여 제약화학과 약학 학위를 차례로 받았습니다. 재학 중에는 지도 교수와 함께 권위 있는 학술지 미국화학회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10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공동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게는 극히 드문 성취였습니다.
탁월한 학업 성취 덕분에 앨리스는 수많은 장학금 제안을 받았고, 그중 하와이 대학교 화학 석사 과정을 선택했습니다. 1915년, 그녀는 하와이 대학교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석사 졸업생이라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볼 메서드'의 탄생
하와이 대학교에서 앨리스 볼은 해리 T. 홀먼(Harry T. Hollmann) 박사와 함께 나병 치료에 사용되던 추부유(chaulmoogra oil)의 특성을 연구했습니다. 당시 나병 환자들은 하와이 몰로카이 섬으로 격리 수용되었고, 추부유를 이용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제에는 심각한 결점이 있었습니다. 점성이 강하고 끈끈한 이 기름은 피부에 발라도 효과가 없었고, 주사하면 피부 밑에 물집이 생길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맛이 매워 구토를 유발하는 탓에 경구 복용도 불가능했습니다.
겨우 23세의 나이에 앨리스는 추부유에서 지방산 에틸 에스터를 분리해 물에 녹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볼 메서드(Ball Method)'로 알려진 이 공정은 치료제를 주사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복용 시 문제점과 피부 물집 문제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남겨진 유산
연구를 진행하던 중 앨리스 볼은 크게 병을 얻어 치료를 위해 시애틀로 돌아갔고, 1916년 12월 그곳에서 2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진단서에는 결핵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강의 중 노출된 염소 중독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학자이자 하와이 대학교 총장이었던 아서 L. 딘(Arthur L. Dean)은 앨리스의 연구를 이어받아 결과를 발표하고 주사용 추부유 추출물을 생산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 공정을 '딘 메서드(Dean's Method)'로 이름을 바꾸려 했으나, 해리 T. 홀먼이 진실을 밝혀내며 앨리스 볼의 업적으로 정정되었습니다.
1918년 하와이의 한 의사는 앨리스 볼이 개발한 치료법을 받은 나병 환자 78명이 퇴원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치료법은 1940년대까지 가장 효과적인 나병 치료법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