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에는 오를 수 없었던 왕녀
클로드(Claude de France)는 프랑스 국왕 루이 12세(Louis XII)와 브르타뉴 공작부인 안(Anne de Bretagne)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당시 프랑스의 살리카법(Salic Law)에 따라 여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의 적법한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왕좌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안을 통해 그녀는 브르타뉴 공국의 상속자라는 중요한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전략적 요충지인 브르타뉴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는 어린 시절 오스트리아 대공 카를(Archduke Charles, 훗날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과 약혼하게 됩니다.
약혼의 파기와 프랑수아 1세와의 결혼
1505년, 건강이 크게 악화된 루이 12세는 이 약혼이 왕국을 합스부르크 세력으로 둘러싸이게 만들고 브르타뉴를 잃는 결과를 초래할 것을 우려했습니다. 결국 그는 삼부회(States-General)를 소집하여 카를 대공과의 약혼을 무효화하고, 대신 젊은 앙굴렘 백작(comte d'Angoulême), 즉 훗날의 프랑수아 1세(François Ier)와 혼약시켰습니다.
이렇게 클로드는 앙굴렘 백작 프랑수아와 결혼하였고, 1515년 남편이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프랑수아 1세의 첫 번째 아내였으며, 훗날 앙리 2세(Henri II)를 포함한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이름을 남긴 왕비
흥미롭게도 오늘날까지도 널리 재배되는 자두 품종인 '레느클로드(Reine-Claude)'는 바로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클로드는 1524년 블루아(Blois)에서 요절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과일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