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Martina Navrátilová, 1956년 출생)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테니스 선수로, 1981년 미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여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수 중 한 명이며,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15세에 첫 우승을 차지하다
마르티나는 1956년 10월 18일 '슈베르토바(Šubertová)'라는 성으로 태어났습니다. 세 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어머니 야나(Jana)는 미로슬라프 나브라틸(Miroslav Navrátil)과 재혼했는데, 그가 바로 마르티나의 첫 번째 코치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테니스를 시작했으며, 1972년 15세의 나이에 체코슬로바키아 전국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듬해인 1973년에는 미국 투어에 진출해 단식과 복식을 함께 소화했고, 18세가 되던 해 프로 선수로 전향했습니다. 1974년에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생애 첫 단식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정권으로부터의 탈출
1975년,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워싱턴에서 크리스 에버트(Chris Evert)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같은 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 정권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영주권(그린 카드)을 취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4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세계 랭킹 4위까지 오르게 됩니다.
1978년에는 윔블던 결승에서 에버트를 꺾고 생애 첫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손에 넣었으며,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라 2년간 그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그 해 그녀는 최정상급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무려 10개 대회에서 우승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1981년 마르티나는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눈부신 선수 경력을 이어갔으며, 1982년에는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되찾아 슈테피 그라프(Steffi Graf)가 무대에 등장할 때까지 5년간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화려하게 막을 내린 선수 생활
1990년, 34세의 나이에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아홉 번째이자 마지막 윔블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단식에서 두 차례 더 그랜드 슬램 결승에 진출하기도 했으며, 1995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에는 복식 무대로 돌아왔고, 가끔씩 단식에도 출전했습니다.
2003년, 46세가 된 그녀는 리앤더 파에스(Leander Paes)와 호손하여 호주 오픈과 윔블던 혼합복식에서 우승했습니다. 이 승리로 마르티나는 네 개의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단식·복식·혼합복식을 모두 석권하는 '통합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역대 세 번째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윔블던에서 총 20번 우승했으며, 그랜드 슬램 타이틀은 58개입니다(1위 마거릿 코트의 기록은 62개). 47세에는 윔블던 1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2006년, 마르티나는 밥 브라이언(Bob Bryan)과 짝을 이루어 US 오픈 혼합복식에서 우승하며 긴 선수 생활의 커튼콜을 가장 아름답게 내렸습니다.
선수 너머의 사회적 유산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1981년 자신의 성적 지향을 공개한 레즈비언으로서,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LGBT)의 권리를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을 돕기 위해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청소년 재단(Martina Navratilova Youth Foundation)'을 설립하는 등 헌신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동물 권리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