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소저너 트루스: 전 노예에서 폐지론자·여성운동가로

이사벨라 바움프리(Isabella Baumfree), 통칭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1883)는 미국의 폐지론자입니다. 전 노예 출신으로서, 해방 후에는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주의 운동을 향한 열렬한 옹호자가 되어 미국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다

이사벨라 바움프리는 1797년경 뉴욕주 헐리(Hurley)에서 노예 가정의 딸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한 살에 팔려 갔고, 이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같은 노예 신분이던 토머스 제프리 하비(Thomas Jeffery Harvey)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827년, 이사벨라는 막내딸 소피(Sophie)와 함께 주인의 농장에서 도망쳤습니다. 이듬해인 1828년 뉴욕주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자 그곳으로 돌아가 하녀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복음주의 종교 공동체에서 일하던 시절, 그녀는 설교자로서의 재능을 키우며 사람들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닌가?’

1843년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그녀는 영적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고, 스스로를 ‘소저너 트루스’라고 칭하며 영혼의 구원을 알리는 설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유토피아적 공동체인 노샘프턴 교육산업협회(Northampton Association for Education and Industry)에 합류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노예제 폐지 운동과 여성주의 운동에 몸담았습니다.

1851년 오하이오에서 열린 여성 권리 대회(Women's Rights Convention)에서 그녀는 역사에 남는 유명 연설 “나는 여성이 아닌가?(Ain't I a Woman?)”를 발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아무도 나를 마차에 태워 주거나, 진창을 건너게 해 주거나, 좋은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여성이 아닌가? 나를 보라! 내 팔을 보라! 나는 밭을 갈았고, 씨를 뿌렸고, 곡식을 창고에 가득 쌓아 올렸으며, 그 어떤 남자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는 여성이 아닌가?”

이 연설은 당대 백인 여성들이 받던 배려조차 흑인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여성의 힘과 능력을 당당히 증명하는 문장들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과 말년

1857년부터는 미시간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소저너 트루스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연방(북군)을 위해 싸우는 흑인 연대 병사들을 위한 식량 모금 활동을 조직했습니다. 노예해방선언이 시행된 후에는 해방된 노예들의 재정착을 돕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1864년에는 워싱턴 D.C.에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을 직접 알현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흑인 난민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고, 나아가 미국 서부에 흑인들의 새로운 정착지, 즉 흑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소저너 트루스는 1883년 11월 26일 미시간주 배틀크릭(Battle Creek)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의 헌신을 기려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National Women's Hall of Fame)에 헌액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노예제 폐지와 여성 권리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