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패니 불록 워크맨(Fanny Bullock Workman, 1859~1925)은 미국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로, 역사상 최초의 여성 프로 산악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여러 차례 고도 기록을 경신하고 자신의 탐험과 여행기를 집필했으며, 동시에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특권 속에서 자란 유년기

패니 불록은 1859년 1월 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부유한 명문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알렉산더 H. 불록은 사업가이자 매사추세츠주 주지사였고, 어머니는 엘비아 해저드였습니다. 그녀는 세 자녀 중 막내로 가정교사들에게 교육받으며 성장했고, 이후 뉴욕의 여성 최고 명문 학교들에 다녔습니다. 가문의 재력 덕분에 유럽 여행이라는 특권도 누려 프랑스와 독일에 머무는 등 폭넓은 견문을 쌓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패니는 남다른 모험심을 키워갔습니다. 그녀가 집필한 단편 소설들에는 귀족 출신 여주인공들이 사회적 의무에서 벗어나 세계를 탐험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관심, 여행에 대한 갈증, 그리고 등산에 대한 매력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싹트고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남편 윌리엄 헌터 워크맨

패니는 1879년 미국으로 돌아왔고, 3년 뒤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인 윌리엄 헌터 워크맨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보다 열두 살 연상이었던 윌리엄은 하버드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결혼 다음 해 패니는 딸 레이첼을 낳았지만, 둘째 아이 지그프리트는 요절했습니다.

패니에게 본격적인 등산의 세계를 열어준 사람은 바로 윌리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많은 여름을 뉴햄프셔주의 화이트 산맥에서 보냈습니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일부인 화이트 산맥은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험준한 봉우리들로 꼽힙니다. 그곳에서 패니는 해발 1,916미터의 워싱턴산을 여러 번 등반했고, 또래 여성 산악인들과도 인연을 맺었습니다. 화이트 산맥의 산악 클럽들은 여성의 등반 활동을 오히려 장려했던 터라, 그녀는 자유롭게 실력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자전거와 함께한 세계 여행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매사추세츠의 안정된 생활은 패니와 윌리엄 모두에게 잘 맞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유럽에서 사는 것을 꿈꾸었고, 양쪽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독일로 정착을 결심합니다. 상속받은 재산과 세계 곳곳에 펼친 인맥 덕분에 여행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패니는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이유로 남편보다 더 제약을 받는 일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여행 기간 아이들을 고용인과 학교에 맡기고 길을 나섰으며, 레이첼과 요절한 지그프리트 역시 그들의 어머니처럼 가정교사 손에서 자랐습니다.

부부는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알제리, 그리고 인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긴 여정을 떠났습니다. 수천 마일을 달리며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묵었습니다. 여행 내내 등산도 병행했는데, 패니는 몽블랑을 오른 최초의 여성 산악인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부부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융프라우와 마테른 봉우리도 정복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여행을 꼼꼼히 기록했고, 패니는 특히 발길이 닿는 곳곳의 여성 지위에 대해 집필했습니다. 이들의 저서들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인도 자전거 여행을 마친 부부는 오늘날 파키스탄 북부에 해당하는 히말라야와 카라코람 산맥 탐험에 나섰습니다. 고지대 등산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두 사람은 진정한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워크맨 부부는 이후 14년간 거의 개척되지 않은 이 지역으로 여덟 차례나 원정을 조직했습니다.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가이드와 짐꾼들의 도움을 받아 1903년에는 해발 6,555미터의 초고봉과 6,880미터의 룽마봉을 올랐습니다. 3년 뒤인 1906년에는 패니가 해발 6,930미터의 피나클 피크를 등반하며 여성 고도 신기록을 세웁니다. 승부욕이 강했던 그녀는 이 기록을 필사적으로 지켰습니다. 1908년 산악인 애니 스미스 펙이 페루의 우아스카란을 7,000미터 봉우리로 여기며 등반에 성공해 기록에 도전해오자, 패니는 프랑스군 지리 측량팀에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그 산의 실제 고도를 측정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6,768미터로, 자신의 기록이 여전히 유효함을 입증한 것입니다.

자전거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부부는 원정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봉우리와 계곡, 빙하를 지도에 옮겼으며 발견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마주한 위험과 극한의 환경도 생생히 전했죠. 이를 바탕으로 여행기를 펴내고 이후에는 강연 무대에 섰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성취와 지역 지식에 대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가이드와 짐꾼으로 고용한 현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부유한 미국인 부부와 현지인 사이의 문화적 벽은 컸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고전했습니다.

탐험 이후의 삶

패니 불록 워크맨: 여성 고도 기록을 세운 산악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1912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워크맨 부부는 히말라야 원정을 접고 프랑스 남부에 정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럽을 순회하며 원정과 여행에 대한 강연을 이어갔습니다. 패니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강연한 최초의 미국 여성이 되었고, 영국 왕립지리학회에서 강연한 두 번째 여성이기도 했습니다.

패니는 유럽의 지리학회와 산악회로부터 수많은 훈장과 명예를 받았습니다. 여성도 남성만큼 산을 오를 수 있음을 직접 증명하며 등산계의 성별 장벽을 허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입니다. 탐험 활동과 병행해 그녀는 여성 권리를 지지했고, 특히 여성 참정권을 위한 서프러제트 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패니 불록 워크맨은 1917년부터 건강이 악화되어 1925년,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 윌리엄은 1937년까지 생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