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도 악쇼노바(Ogdo Aksënova, 1936~1995)는 두 문화 사이에 선 러시아의 돌간족 시인이다. 교사로 살며 자신의 민족의 기억과 문화를 수집하고, 노래와 시를 남겼다.
북방의 소수민족, 돌간족
오그도 악쇼노바는 1936년 2월 8일, 당시 소련 영토였던 러시아 북부 타이미르의 돌가노-네네츠 구역 보가니다에서 태어났다. 유목민족인 돌간족 출신으로, 순록을 치는 목축 가정에서 성장했다.
‘북방의 작은 민족’이라 불리는 돌간족은 2002년 러시아 인구조사 기준 7,261명에 불과하다. 북극권을 넘어선 시베리아 북부에 터전을 둔 이들은 에벤크족과 야쿠트족 계통의 집단에 러시아 정착민의 후손까지 섞여 이루어진 민족이다. 유목 또는 반유목 생활을 하며 어업과 사냥, 순록 목축으로 생계를 꾸리는 돌간족은 자연환경과 깊은 유대를 맺어 왔다.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돌간어는 별도의 문자가 없었기에, 문화와 노래, 신화는 오직 구전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었다.
1930년대 초 소련 체제 아래에서 돌간족은 콜호스(집단농장)로의 강제 정착을 강요당했고, 민족의 문화와 언어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 학교에서는 돌간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전통 사회의 소련화와 생활방식의 획일화라는 격변 속에서 오그도는 태어나고 자랐으며,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변화를 한층 가속화했다.
민족 문화의 수호자
오그도 악쇼노바는 노릴스크의 기숙학교에서 러시아어와 읽기·쓰기, 그리고 문학을 배웠고, 곧 글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중등학교 시절부터 러시아어로 첫 산문과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특히 자신이 목격한 사회의 변화를 시적으로 담아냈다. 1953년 마을에 트랙터가 처음 들어온 광경을 그녀는 “울부짖으며 빛을 내는 썰매의 행렬”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오그도는 교사이자 사서가 되었고, 유목민들의 이동 경로에 설치된 행정 중계 거점인 ‘붉은 추움(чум, 유목민용 천막)’을 운영했다. 1960년대에는 모스크바의 막심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수학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쌓았다.
러시아어를 깊이 사랑했지만, 오그도는 자신의 민족 문화에 대한 애착을 결코 놓지 않았다. 마을에서 마을로 옮겨 다니며 전설과 설화, 신화, 전통 노래를 꼼꼼히 수집해, 이들이 지배 문화 속에 사라지거나 동화되지 않도록 했다. 문자가 없던 돌간어를 위해 그녀는 1973년 러시아어와 돌간어를 함께 실은 이중언어 시집 『바락산(Baraksan)』을 출간했는데, 여기에는 시와 속담, 수수께끼가 담겼다. 이 작업에서 그녀는 언어학자 블라디미르 나델랴예프가 개발한 표기법을 기반으로 삼아, 자신의 민족 최초의 문자 문화를 창조해냈다. 아울러 돌간어 입문서와 약 4,000 단어 규모의 이중언어 사전도 펴내 돌간어의 기록과 보급에 결정적인 토대를 마련했다.
오그도 악쇼노바는 1995년 2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돌간 문학을 창시하고, 전통과 근대라는 두 세계 사이에 든든한 다리를 놓은 인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