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에 맞선 저항 운동의 영웅인 은다테 얄라 음보드(Ndaté Yalla Mbodj, 1810~1860)는 오늘날 세네갈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역, 와알로(Waalo)를 다스린 위대한 군주였습니다.
링게르(Linguère), 왕실의 여성들
은다테 얄라 음보드는 파팀 야마르 쿠리아예 음보드(Fatim Yamar Khouriaye Mbodj)와 아마르 파팀 보르소(Amar Fatim Borso)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1810년 와알로 왕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와알로는 졸로프(Djolof) 제국이 분열하면서 생겨난 나라로, 세네갈 강 삼각주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속한 테디에크(Tédiek) 가문은 아프리카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던 프랑스 상관들과의 무역과 교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쌓았습니다.
1816년 와알로의 군주를 뜻하는 '브라크(Brack)'인 쿨리 음바바 디옵(Kouly MBaba Diop)이 사망하자, 그의 사촌이자 링게르(linguère, 군주의 어머니·자매·사촌 등 왕실 여성을 가리키는 호칭)인 파팀 야마르가 뒤를 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아마르 파팀 보르소는 새로운 브라크가 되었습니다. 링게르들은 군사와 정치 양면에서 백성을 이끌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에, 왕국을 다스리는 일에 능했습니다.
1820년 3월, 무어인(Moor) 전사들이 브라크의 부재를 틈타 수도를 공격했습니다. 이에 파팀 야마르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직접 이끌고 적을 몰아내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녀들은 첫 번째 공격은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두 번째 공격에서 패배했고, 포로로 잡히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습니다. 죽음을 앞둔 파팀 야마르는 두 딸인 은줌부트 음보드(Ndjeumbeut Mbodj)와 은다테 얄라를 탈출시켰습니다.
와알로의 군주
언니 은줌부트는 1831년경 권력을 잡았습니다. 평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녀는 트라자르(Trazar) 무어인의 지배자인 에미르 모하메드 엘 하비브(Mohamed El Habib)와 결혼했습니다. 두 왕국의 동맹을 경계한 프랑스는 와알로에 대한 첫 번째 군사 행동에 나섰습니다. 현명한 군주로 이름 높았던 은줌부트의 통치는 프랑스와의 갈등으로 점철되었고, 그녀가 1846년에 세상을 떠나자 여동생 은다테 얄라가 뒤를 이었습니다. 은다테 얄라는 1846년 10월 와알로의 정식 군주로 즉위했습니다.
1847년부터 은다테 얄라는 프랑스 당국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소닝케(Soninké)족이 이끄는 가축 떼가 생루이(Saint-Louis) 시로 자유롭게 통행할 것을 요구했고, 와알로 왕국 영토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1848년에는 아들 시디야 은다테 얄라 디옵(Sidya Ndaté Yalla Diop)을 낳았습니다. 투지 넘치고 주관이 뚜렷한 여왕인 그녀는 울로프(Wolof) 왕국들 안에서 프랑스 측의 핵심 협상 상대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에 굽히지 않고 끊임없이 맞서며, 프랑스와의 교역을 금지하고 프랑스를 상대로 한 약탈까지 감행했습니다.
프랑스군의 원정
1854년 말, 루이 파이데르브(Louis Faidherbe)가 세네갈의 식민지 행정관으로 임명되면서 프랑스는 군사 원정을 결정합니다. 1855년 2월, 와알로 전사들이 가지지 못한 총으로 무장한 15,000명의 병력이 와알로에 상륙했습니다. 왕국의 귀족들을 앞에 두고 은다테 얄라 음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정복자들의 침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군대는 흩어졌고, 와알로의 티에도(tiedo, 전사)들은 그토록 용맹했지만 거의 모두 적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침략자가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와알로를 외국인들에게 내주어야만 할까요?"
은다테 얄라는 대군을 직접 이끌고 프랑스군과 맞섰지만, 결국 빠르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은다테 얄라 음보드는 1860년, 와알로 왕국의 마지막 군주로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의 아들 시디야 은다테 얄라 디옵은 프랑스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의 불씨를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