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애니 오클리(Annie Oakley, 본명 피비 앤 모지스(Phoebe Ann Moses), 1860~1926)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여성 총잡이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솜씨와 정확한 조준 실력으로 당대 최고의 사격수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드러난 사격의 천재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피비 앤, 즉 애니는 1860년 8월 13일 오하이오 국경 지역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인 수전 와이즈(Susan Wise)와 제이콥 모지(Jacob Mosey)는 퀘이컬 교도였으며,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중 두 명은 어린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1865년 겨울, 폭설 속에서 저체온증에 걸린 제이콥은 이듬해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때 애니는 여섯 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가족은 극심한 빈곤에 빠졌고, 학교를 그만둔 애니는 여덟 살 무렵부터 동생들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덫을 놓고 사냥과 총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그녀가 비범한 사격 재능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리들'이라 불린 잔혹한 주인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그러나 집안 형편은 여전히 궁핍했습니다. 자녀들을 먹여 살릴 수 없게 된 수전은 애니와 언니를 다키 카운티 빈민원(Darke County Infirmary)에 맡겨 에딩턴 부부의 보호를 받게 했습니다. 이 시설에서 애니는 특히 바느질을 배웠으며, 이후 지역의 한 부부 밑에 하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애니는 극심한 학대를 당했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가혹한 대우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녀는 그 부부를 "이리들(the wolves)"이라 불렀습니다. 약속된 급료와 교육은커녕 무거운 육체노동을 강요당했고,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잔혹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에는 바느질 중 잠든 이유로 여주인에게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눈밖에 내몰리기까지 했습니다. 수년간의 학대 끝에 애니는 '이리들'의 집을 도망쳐 나왔고, 그사이 재혼한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사격 대회에서의 운명적인 만남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애니는 다시 사냥을 시작합니다. 엎드린 머리 한 발로 사냥감을 깔끔하게 처리해 팔았기 때문에, 그녀의 사격 실력은 지역에서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게 됩니다. 유명 저격수 프랭크 E. 버틀러(Frank E. Butler)가 신시내티에서 자신의 쇼를 열었을 때, 한 호텔 주인이 애니와 버틀러 간의 사격 대결을 주선했습니다.

현지 사격 선수들과 경기를 거듭해 온 25세의 프로 사격수 버틀러는 자신의 상대가 열다섯 소녀일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대회에 나오는 소녀를 남의 것인 소총으로도 이길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그는 애니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비둘기 사격으로 겨루며 한 발이라도 빗나가면 지는 승부를 벌입니다. 애니가 25번째 조준을 하는 순간, 프랭크는 사격에 실패했고 결국 대회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버팔로 빌 와일드 웨스트 쇼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대회가 끝난 직후인 1876년 8월, 두 사람은 결혼했고 애니는 남편의 쇼에 합류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녀는 신시내티에 정착한 지역의 이름을 따 '오클리(Oakley)'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서커스에서 함께 공연했지만, 애니가 항상 사격수로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1885년, 부부는 버팔로 빌 와일드 웨스트 쇼(Buffalo Bill Wild West Show)에 합류했습니다. 애니의 재능에 감탄한 단원 시팅 불(Sitting Bull)은 그녀에게 '와타냐 치실라우(Watanya Ciciliaou)', 즉 '명중하는 작은 사람'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애니는 쇼에서 명실상부한 트리거의 달인으로 인정받았고, 남편 프랭크는 아내의 재능 앞에 스스로 사격을 접고 아내의 공연 준비에만 전념했습니다.

애니 오클리는 화려한 기예를 선보이며 수많은 위업을 쌓았습니다. 플레잉 카드를 모서리 방향으로 쏘아 두 쪽으로 가르고, 촛불의 불꽃을 꺼냈으며, 프랭크 입에 문 담배의 재만 튕겨내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재능은 군중을 매료시켰고,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는 큰 인기를 얻으며 수많은 방문객과 찬사를 받았습니다.

서부의 소녀(The Western Girl)

1887년 새 저격수 릴리언 스미스(Lillian Smith)의 영입으로 긴장감이 감돌자, 애니 오클리와 남편은 한동안 유럽 투어를 떠났습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Kaiser Wilhelm II)를 상대로는 담배 꽁초를 쏘는 묘기를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황제가 직접 손에 들고 있도록 요청했습니다. 이 단독 투어를 마친 뒤 애니와 프랭크는 버팔로 빌 와일드 웨스트 쇼로 돌아왔습니다.

1901년 애니는 열차 사고로 다쳤지만 일시적 마비에서 빠르게 회복되어 커리어를 재개했습니다. 이듬해인 1902년에는 그녀를 위해 특별히 집필된 연극 서부의 소녀(The Western Girl)의 주연을 맡아 사격 실력을 마음껏 선보였습니다.

자선사업가로서의 삶

애니 오클리: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무대 활동과 병행하여 애니 오클리는 어린 소녀들에게 사격을 가르치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 총을 익히는 것이 신체적·정신적 단련일 뿐 아니라 자기 방어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평생 동안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여성은 약 1만 5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자선사업가로서 여성의 권리 신장에도 앞장섰으며, 특히 자신이 아는 많은 젊은 여성들을 후원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애니의 사격 실력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고, 그녀는 공연과 대회에 계속 출연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1922년, 62세의 나이에 그녀는 15미터 거리에서 클레이 표적 100개를 모두 명중시키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1924년에도 여전히 기록을 경신하며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애니 오클리는 1926년 11월,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프랭크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18일 뒤 아내를 따라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