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에 즉위한 프랑크의 왕
힐데리히 1세(Childeric I)의 아들인 클로비스(Clovis)는 481년, 전사들이 그를 방패 위에 들어올리는 고대 게르만식 의식을 통해 살리안 프랑크족의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5세였습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로마가 버리고 간 광활한 영토를 둘러싸고, 클로비스는 문화와 종교가 제각각인 여러 세력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갈로로만인(Gallo-Romans)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래 기독교 신앙을 지녔고, 서고트족과 부르군트족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었으며, 알레만니족과 프랑크족은 아직 다신교 신봉자들이었습니다.
수아송 전투와 세력 확장
486년 클로비스는 수아송 전투에서 로마 잔류 세력의 지도자인 장군 시아그리우스(Syagrius)를 격파하는 결정적 승리를 거두며 갈리아 북부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습니다.
톨비아크 전투와 개종의 서약
서고트 왕 알라릭 2세와의 전쟁 중 클로비스는 승리를 조건으로 개종을 맹세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독교도였던 아내 클로틸드(Clotilde)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알레만니족이 우세를 점하고 있던 위기 속에서도 클로비스는 496년 톨비아크(Tolbiac)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며 이들을 정복했습니다.
랭스에서의 세례, 역사적 전환점
498년경 성탄절 밤, 클로비스는 랭스(Reims)의 주교 레미기우스(성 레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갈로로만 갈리아 정복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으로 개종함으로써 현지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었고, 이는 적대 세력과의 싸움에서 강력한 후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승슬장구한 클로비스는 마침내 최초의 '프랑크의 왕'이 되었으며, 파리를 수도로 삼았고(509년), 서유럽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군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생몰년: 465년경 ~ 511년 11월 27일
신상 정보
직위: 국가 원수
칭호: 프랑크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