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 메이벨 셜리 리드 스타(Myra Maybelle Shirley Reed Starr), 통칭 벨 스타(Belle Starr, 1848~1889)는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상징하는 전설적인 무법자입니다. 그녀는 제임스 형제, 영거 형제, 그리고 스타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으며 서부 역사에 굳건히 이름을 남겼습니다.
남다른 교육 배경
1848년 2월 5일, 미주리주 카르타지에서 엘리자베스 해트필드 셜리와 존 셜리의 딸로 태어난 마이라 메이벨 셜리는 '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부모는 1860년대까지 농사를 지었으나, 아버지 존은 가족 농장을 팔고 카르타지에 호텔, 대장간, 마구간을 매입하며 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미주리 시절 벨은 프랭크 제임스, 제시 제임스 형제와 영거 형제들과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정규 교육을 받았는데, 특히 피아노 연주를 배웠고 아버지가 설립을 도운 사립 여학교인 카르타지 여성 아카데미(Carthage Female Academy)를 졸업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 짐 리드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면서 벨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1864년 북군의 카르타지 공격 이후 셜리 가족은 고향을 떠나 텍사스로 이주했습니다. 벨과 오빠 존 '버드'는 남부연합군의 정보 요원으로 활동하며 북군 부대의 위치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한편 버드는 퀀트릴의 무자비한 게릴라 부대에 콜 영거, 제임스 형제와 함께 합류했다가 그해 북군 병사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벨은 카르타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소꿉친구 짐 리드와 결혼하여 로지 리(별명 펄)와 제임스 에드윈(에디) 두 자녀를 낳았습니다.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워지자 짐은 아내의 오랜 친구들인 제임스 형제, 콜 영거, 샘 스타 등 무법자들과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아칸소에서 살인 혐의로 수배된 짐은 1871년 가족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피신했지만, 위조지폐 사건에 연루되면서 불과 2년 만에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1873년, 짐과 두 명의 공범은 역마차를 습격해 무려 3만 달러를 손에 넣었습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음에도 벨은 공모 혐의를 뒤집어씌워졌고, 부부는 함께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짐은 텍사스주 파리로 피신하지만 1874년 그곳에서 처형당하고 만니다.
스타 일가와의 동행
홀로 남은 벨은 달라스로 자리를 옮겨 역마차 강도로 얻은 돈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녀의 행실과 독특한 복장은 이미 서부 전역에 전설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술집을 드나들며 술을 마시고 도박을 즐겼고, 말을 달리며 거리에서 하늘을 향해 총을 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깃털 장식의 스테슨 모자에 롱부츠, 허리에는 권총 두 자루와 탄약 띠를 두른 모습은 그녀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후 벨은 자녀들을 친정에 맡기고 텍사스를 떠나, 체로키 출신 무법자 샘 스타의 일가에 합류합니다. 샘의 갱단은 아칸소와 오클라호마 경계에 있는 인디언 준주의 산악 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습니다. 벨은 그들과 함께 강도 행각을 기획하고 조직했으며, 뇌물과 매력을 앞세워 동료들이 법망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톡톡히 해냈습니다. 1880년, 벨은 샘 스타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1883년 부부는 말 절도 혐의로 체포되어 각각 1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9개월 만에 석방된 두 사람은 곧바로 범죄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이후에도 벨은 절도와 우체국 습격 등으로 여러 차례 체포되었지만, 번번이 증거 부족으로 풀려나는 신기를 보여주었습니다.
1886년 12월, 샘 스타는 가족 간 다툼이 빚은 총격전에서 사망했습니다. 두 번째 과부가 된 벨에게 이 상실은 뼈아픈 타격이었습니다.
풀리지 않은 살인 사건
샘의 죽음 이후, 벨은 인디언 준주에 대한 거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샘 스타의 친척인 짐 줄라이(Jim July)와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그러나 1889년 2월, 41번째 생일을 이틀 앞두고 벨 스타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등 뒤에서 총탄을 맞았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그녀에게 암살자는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 추가로 총구를 겨눴습니다.
살인의 정황과 범인의 신원, 유죄 판결 여부까지 의견은 분분합니다. 목격자가 없었던 탓에 실제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으며, 범행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여러 용의자만 남겨졌습니다.
- 짐 줄라이: 그녀의 새 남편으로, 부부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 아들 에디: 역시 범죄의 길에 빠졌으며, 말을 허술하게 돌본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에드거 왓슨: 그녀가 춤 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원한을 품었다는 이웃입니다.
벨 스타는 자신이 살던 땅에 안장되었습니다. 딸 펄은 어머니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새겨 넣었습니다.
Shed not for her the bitter tear,
Nor give the heart to vain regret;
'Tis but the casket that lies here,
The gem that filled it sparkles yet.
(그녀를 위해 쓰디쓴 눈물 흘리지 말라,
헛된 후회에 마음을 내주지 말라;
여기 잠든 것은 겨우 육신의 껍데기일 뿐,
그것을 채우던 영혼의 보석은 아직도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