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잔 드루앙(Jeanne Deroin, 1805~1894)은 여성에게 선거권과 피선거권조차 없던 시대였던 1849년, 입법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프랑스 전역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여성 종속에 대한 질문
잔 드루앙은 1805년 12월 31일 파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세탁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이후 교사 자격증 취득을 결심하고 독학으로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낙방하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좌절하지 않았고, 끝내 자격증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합니다.
그녀는 생시몽주의(Saint-Simonianism)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였으며, 산업 발전이 사회 전반의 변화를 가져와 인간을 노동의 소외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지위 개선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26세 되던 해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두 성별 사이에 조직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차이가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1832년에는 앙투안 율리스 데로슈(Antoine Ulysse Desroches)와 시민혼을 올렸으나,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세 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제2공화국과 여성 운동
1848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제2공화국이 선포되자, 잔 드루앙은 곧바로 활동에 뛰어들며 여성 권리 운동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부활된 보통선거권은 21세 이상의 프랑스 국적 남성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에 그녀는 '보통선거(universal suffrage)'라는 용어에 '남성(masculine)'이라는 단어를 덧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이 참정권에서 배제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같은 해 6월, 역시 노동자 계급 출신인 페미니스트·사회주의 운동가 데지레 게(Désirée Gay)와 함께 신문 『여성의 정치(La Politique des Femmes)』를 창간했습니다. 이 신문은 후에 『여성의 여론(L'Opinion des Femmes)』으로 제호를 변경하게 됩니다. 아울러 '여성의 목소리 협회'와 '여성 해방 협회' 등의 단체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입법 선거 출마 선언
1849년 4월, 잔 드루앙은 여성에게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없던 상황에서 입법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당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 선거를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 소중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정치 영역에서의 남녀 간 불평등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그녀의 유세는 같은 진영 안에서조차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신들이 자유, 평등, 박애라는 위대한 원칙의 모든 결과를 진심으로 원한다면, 부당한 배제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 이 원칙들의 이름으로, 나는 입법 의회 후보로 나섭니다."
'매우 심각한 사건'
이러한 행보 속에서 잔 드루앙은 극심한 고립에 직면했습니다. 드물게 지지와 동정, 심지어 존경의 표현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조롱과 모욕에 시달리며 보내야 했습니다. 조르주 상(George Sand)이나 마리 다굴트(Marie d'Agoult)처럼 같은 진영에 속한 지식인들조차 그녀의 출마에는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은 1849년 4월 12일자 일간지 『르 뻬플(Le Peuple)』에서 잔의 출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격렬하게 비난했습니다.
"최근 열린 사회주의 만찬회에서 우리가 침묵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다. 한 여성이 국민의회 입후보를 진지하게 신청한 것이다. 우리는 공중 도덕과 정의 그 자체의 이름으로, 이러한 망상과 원칙들을 강력히 항의하지 않고 넘겨볼 수 없다. 사회주의가 이에 연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성별의 정치적 평등, 즉 공직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일시하는 것은 논리뿐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사물의 본질까지도 거부하는 궤변 중 하나이다."
법적으로 출마 자격이 없었던 잔 드루앙은 결국 당선될 수 없었습니다. 1851년 12월 쿠데타 이후에는 영국으로 망명길에 올랐고, 1894년 4월 빈곤 속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록 그녀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잔 드루앙이 남긴 발자취는 프랑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여성이 마침내 선거권을 손에 넣은 것은 1944년, 그녀가 출마를 선언한 지 무려 95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