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노예에서 스파이로, 남부연합 백악관을 흔든 메리 바우저(Mary Bowser)

노예로 태어난 메리 엘리자베스 바우저(1839년경 – ?)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하녀로 위장해 북군을 위한 첩보 활동을 벌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몰래 수집한 정보는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노예로 태어나다

노예에서 스파이로, 남부연합 백악관을 흔든 메리 바우저(Mary Bowser)메리 리처즈는 1839년경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인근에서 엘리자 베이커와 존 반 루 가문의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1846년 5월, 그녀는 '메리 제인'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데, 기록에 따르면 세례식은 반 루 가문이 평소 노예들의 세례를 집행하던 곳이 아닌 가문의 교회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메리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1851년 존 반 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딸이자 열렬한 폐지론자였던 엘리자베스 반 루는 메리에게 사실상의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메리의 뛰어난 지능을 눈여겨본 엘리자베스는 당시 버지니아에서 흑인에게 글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북부로 보내 공부하게 했습니다. 1855년에는 라이베리아의 선교 공동체에 합류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나, 메리는 1860년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1861년 4월, 남북전쟁의 첫 전투가 벌어진 지 나흘 만에 메리는 윌슨 바우저와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등록부에 'E. 반 루 부인의 유색인종 하인'으로 기재되었습니다.

남북전쟁과 첩보 활동

북부 연방의 확고한 지지자였던 엘리자베스는 부상병들을 돌보는 한편 첩보망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의 아내이자 남부연합의 유일한 퍼스트 레이디인 바리나 데이비스를 설득해, 메리 바우저를 하녀로 고용하도록 만듭니다. 언제 들통날지 모르는 극도로 위험한 임무였지만, 메리는 과감히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남부연합 백악관에서 일하는 동안 메리는 각종 정보를 수집해 엘리자베스의 첩보망을 통해 북군에 전달했습니다. 동료 첩보원 토머스 맥니븐은 그녀에 대해 "사진 같은 기억력을 지녔다. 대통령 책상 위에서 본 것은 무엇이든 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암송해낼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보복을 우려해 관련 문서들이 모두 파기되면서 메리가 수집한 정보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북군의 벤저민 버틀러, 율리시스 S. 그랜트, 조지 샤프 장교들은 모두 엘리자베스의 첩보망이 결정적인 정보원이었다고 극찬했습니다.

전쟁 이후의 삶

연방의 승리 이후 메리 바우저의 행적은 빠르게 기록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리치먼드에서 해방된 노예들을 위한 교사로 일했고, 여러 차례 필명을 사용해 공개 강연을 열었습니다. 신랄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태도로 자신의 삶, 교육 과정, 라이베리아에서 보낸 시절, 그리고 전쟁 중의 경험을 생생하게 이야기했으며, 정치 문제도 마다하지 않고 젊은 흑인들에게 스스로 교육받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1867년, 메리 J. 리처즈라는 이름으로 조지아주에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낮에는 어린 학생들에게, 밤에는 성인들에게 수업을 열었고, 그녀 자신이 직접 가르쳤습니다. 같은 해 6월, 그녀가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이름이 이제는 메리 J. R. 개빈(Garvin)이라고 밝힌 것이, 남부연합의 심장부에서 활약했던 전직 노예 출신 스파이 메리 바우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