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두앵 1세(Baldwin I, ?~1118)는 제1차 십자군의 핵심 인물이자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국왕입니다. 그는 십자군의 지도자 고드프루아 드 부용(Godefroy de Bouillon)의 형제로, 1095년 형과 함께 제1차 십자군 원정에 참전하여 동방에 자신만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에데사 백국의 창건
원정 도중 보두앵은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진격하여 십자군이 동방에 세운 최초의 국가인 에데사 백국을 건설하고 그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서유럽 기사들이 비잔틴·이슬람 세계의 경계에 세운 첫 번째 정착 국가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예루살렘 왕위 계승
1100년 형 고드프루아가 사망하자 보두앵은 에데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통치자 가운데 처음으로 '왕(King)'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인물로, 왕국의 체제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중해 연안 정복
1104년에는 제노바 함대의 지원을 받아 프톨레마이스(Ptolémaïs), 즉 생장다크르(오늘날의 아코)를 점령했습니다. 이어 1109년에는 베리투스(Berythe, 오늘날의 베이루트)마저 손에 넣으면서 기독교 세력의 해안 거점을 더욱 넓혔습니다. 이러한 항구 도시들의 확보는 유럽과의 해상 교역과 군사적 연결에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몬트레알 성 축조와 최후
1115년에는 요르단 남쪽 변경의 방어와 상로 이집트 감시를 위해 몬트레알 성을 축조했습니다. 사라센(무슬림) 군대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해 온 그였지만, 이집트 파라미아(Pharamia) 공성전 중 이질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던 길에 사막의 라리스(오늘날 이집트 시나이 반도 북부의 엘아리시 부근)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보두앵 1세는 무력과 정치적 수완을 바탕으로 십자군 국가를 안정시키고 확장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후 예루살렘 왕국은 그가 닦아 놓은 기반 위에서 한동안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