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일렌 엠베트(1801~1851): 에리트레아 아스마라 고원을 다스린 숙련된 여성 지도자

시대의 필요에 의해 정치에 발을 들인 일렌 엠베트(Ilen Embet, 1801년경~1851년)는 에리트레아 아스마라 고원 지역을 다스리며, 병사들을 전장으로 이끌고 스스로도 무기를 들고 싸운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총명한 여성

일렌 엠베트의 삶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매우 드뭅니다. 그녀는 1801년경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국경 지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견해가 갈리는데, 어떤 문헌은 '아예트 하고스(Ayte Hagos)'라고 기록하고, 또 다른 문헌은 '아예트 셀탄의 아들 아예트 피세하(Ayte Fisseha)'라고 언급하며, 두 이름을 혼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자료들은 일렌이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화술의 소유자였으며, 용감하고 수완가인 정치가였다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합니다.

일렌 엠베트(1801~1851): 에리트레아 아스마라 고원을 다스린 숙련된 여성 지도자

아이테 솔로몬과의 결혼

일렌 엠베트는 아스마라 고원 지역을 다스리던 하체가(Hazzega)의 칸티바(kantiba, 지역 수장) 자라이(Zar'ay)의 장남인 아이테 솔로몬(Ayte Salomon)과 결혼했습니다. 슬하에는 딸 테메르차(Temertsa)와 두 아들 월데미카엘(Woldemichael), 마르에드(Mar'ed)를 두었습니다. 건강이 허약했던 솔로몬은 가족들에게 인기가 없었고, 아버지 자라이조차 손자 가브라이 하브테차욘(Gabray Habtetsayon)을 더 아꼈습니다. 관습상 자라이는 직위를 아들에게 물려주었지만, 이러한 편애는 솔로몬 사후까지도 긴장과 암투를 낳았습니다.

솔로몬은 1820년대에 권력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역사 기록으로도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그는 곧바로 경쟁 관계에 있던 인접 지역 체아차가(Tse'azzaga)를 공격했다가 패배하여 도주했고, 어머니의 출신 지역에 몸을 숨겼습니다. 두 이웃 지역 간의 갈등은 격화되었고, 남편의 패배에 대한 복수를 위해 일렌은 남은 병사들을 규합하고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결국 두 개의 전선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일렌은 동맹 구축에 나섰습니다. 특히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라이(Tigray)의 통치자 슘아가메 수바가디스(Shum-Agame Subagadis)와 손잡았고, 수바가디스가 에리트레아 고원을 평정한 후 그녀를 아스마라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했습니다. 1831년 수바가디스가 사망하자, 수완가인 일렌은 북부 여러 주를 다스리던 데자즈마치 우베(Dejjazmatch Wubé)와 새로운 동맹을 맺으며 영향력을 이어갔습니다.

통치의 종언

일렌 엠베트는 성격이 강하고 적들을 가차 없이 다루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지나치게 보복심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 적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동시에 많은 원한을 샀습니다. 특히 시아버지가 가장 아끼던 손자 가브라이는 그녀의 통치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지역의 숲속에서 반군으로 살아갔으며, 갈등과 음모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이테 솔로몬은 1837년경 세상을 떠났습니다. 1840년대 후반, 끊임없는 음모와 권력 다툼에 지친 일렌은 장남 월데미카엘에게 권력을 넘겨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녀는 하체가의 성모 교회로 물러나 수녀가 되어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비극적인 최후

그러나 은둔 생활 중에 과거의 적이었던 딤베잔(Dimbezan)의 칸티바 월데가베르(Woldegaber)가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일렌의 딸의 남편으로, 아내를 학대한 뒤 내버렸던 인물이었고, 솔로몬에게 맡긴 재물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며 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몇 해 전 일렌은 전투에서 그를 격파한 바 있었습니다.

방문 직후 월데가베르가 살해되자 그의 친족들은 일렌을 범인으로 몰았습니다. 그녀는 도피하여 인근 지역에 몸을 숨겼지만, 그녀를 보호하던 이들은 적들의 보복 공격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일렌과 그녀의 손자 둘을 인도했고, 손자들은 고문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일렌 엠베트는 185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