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94. 파텔은 왕들이 신민을 함부로 처형할 권리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94. 파텔은 왕들이 신민을 함부로 처형할 권리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토번 통합 이후 남은 과제, 민주적 통치 체제

사르다르 파텔(Sardar Patel)이 인도 내 토번(번왕국)들을 인도 연방에 편입시킨 것은 위대한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이 성과는 토번 내부에 민주적인 정부 체제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독립 인도에 합류하기 전까지 토번들은 영국의 종주권 아래 놓여 있었고, 영국은 이들 국가에서 사실상 자유롭게 통치할 권리를 행사해 왔습니다.

어떤 번왕국의 왕이든 왕좌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오직 영국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호의'는 대개 그 나라의 국고가 영국의 수탈 대상으로 제공되는 동안에만 지속되곤 했습니다. 가장 큰 번왕국에서는 영국이 마음에 드는 후계자를 직접 골라 왕위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반면 독립 인도에서 왕들의 지위는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국방, 통신, 외교만 중앙 정부에 맡기고 나머지 모든 분야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철수 후 왕들이 누리게 될 특권

영국이 떠난 뒤라면 토번의 왕들은 금빛 왕관과 화려한 터번을 당당히 두르고 높은 궁전 안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백성을 이유 불문하고 교수형에 처할 수도 있었고, 번왕국의 모든 천연자원과 백성에게서 걷어들인 각종 세금을 자신의 사치에 탕진할 수도 있었습니다. 인도 독립의 진정한 혜택은 오직 이러한 소수의 왕들에게만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파텔의 설득과 경고, 프라자 만달 운동

파텔은 두 개 마을을 다스리는 작은 영주부터 가장 큰 번왕국의 군주에 이르기까지, 어떤 왕도 신민을 처형할 권리를 계속 쥐고 있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따라서 이들 번왕국을 민주적 통치 체제 아래로 가져오는 일이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습니다.

파텔은 인도의 왕들에게 근대 세계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토번의 국가 권력 역시 국민에 의해, 그리고 국민의 복지를 위해 행사되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또한 어떤 번왕국에서든 소란과 무질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번왕국들에서는 독립 이전부터 이미 '프라자 만달(Praja Mandal)'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절반에 그친 개혁의 현실

그러나 파텔의 노력은 부분적인 성공에 머물렀습니다. 일부 큰 번왕국에서는 대중(국민) 내각이 구성되었지만, 총리부터 일반 장관에 이르는 대부분의 요직은 여전히 왕의 친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번왕국에서는 지방 헌법도 제정되었지만, 그 안에서조차 일반 백성보다 자기르다르(jagirdar, 봉건 영주)에게 더 많은 권리가 보장되었습니다.

일부 번왕국에서는 선거제를 바탕으로 정부가 수립되기도 했지만, 헌법 자체가 대토지 소유자(자미다르)만이 피선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명목상의 민주주의에 불과했습니다.

완전한 독립을 위한 필수 조건

파텔은 모든 번왕국의 백성들이 인도 각 주의 주민들과 동등한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교육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평등한 기회와 시설을 제공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왕과 그들의 봉신들이 권력을 계속 쥐고 있는 한,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