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에메 랄레망(Aimée Lallement), 육상 챔피언이자 열방의 의인

에메 마리 엘레오노르 랄레망(Aimée-Marie Éléonore Lallement, 1898~1988)은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였으며, 육상 세계 챔피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한 유대인 소년을 구한 공로로 '열방의 의인(Righteous Among the Nations)' 칭호를 수여받은 인물입니다.

여성을 위한 올림픽

에메 랄레망은 1898년 8월 16일 프랑스 지베(Givet)의 교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베르사유로 피난하여 그곳에서 학업을 마쳤고, 훗날 스스로도 교사가 되었습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는 이미 1906년부터 여성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영감을 받은 에메는 일찌감치 여성 권리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올림픽이 여성의 참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분노한 그녀는 1924년 파리 올림픽을 계기로 여성 전용 경기를 직접 조직했고, 특히 110m 달리기와 창던지기 종목에서 뛰어난 기량을 뽐냈습니다. 사회당 당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이레네 졸리오퀴리(Irène Joliot-Curie)와도 교류했습니다.

소년 얀켈의 구출

제2차 세계대전 중 에메는 랭스(Reims)에 거주하며 유대인 가족인 프제드보르츠(Przedborz) 가족을 만나게 됩니다. 1942년, 가족의 어머니 브란들라(Brandla)가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되자 에메는 즉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후 아버지 이삭(Isaac)마저 체포되자, 아들 얀켈(Yankel)은 지붕을 넘어 도망쳐 에메에게 피신했습니다.

에메는 자신이 원장으로 있던 여학생 숙소에 얀켈을 숨겨 주었고, 더 큰 안전을 위해 시골 별장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에메의 오랜 친구이자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마을 교사가 얀켈의 교육을 맡아 주었습니다. 얀켈은 해방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생활하며 정원에서 기른 작물로 연명하고 에메의 배급표를 나눠 쓰며 버텼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프제드보르츠 가족 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에메는 얀켈을 정식으로 입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에메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회당 내 사회주의 여성 부문의 지도자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인권 옹호를 위해 힘썼고, 이러한 사회 활동과 병행해서도 규칙적인 스포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에메 랄레망은 1988년 9월 11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용감한 행동을 기려 그녀에게는 열방의 의인 칭호가 수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