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사보이의 루이즈(1476~1531), 프랑스 왕국을 지켜낸 섭정

루이즈 드 사부아: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

사보이의 루이즈(1476~1531), 프랑스 왕국을 지켜낸 섭정

루이즈 드 사부아(Louise de Savoie)는 사보이 공작 필리프 2세, 일명 '땅 없는 자' 필리프(Philippe sans Terre)와 부르봉 가문의 마르그리트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1490년, 그녀는 앙구엠 백작 샤를 드 발루아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낳았는데, 바로 훗날 프랑스 국왕이 되는 프랑수아 1세와 작가이자 나바르 왕비가 되는 마르그리트 당굴렘입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루이즈는 남은 삶 전체를 자녀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특히 아들 프랑수아에게 폭넓은 교양과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심어주었으며, 이는 훗날 그가 대표적인 르네상스 군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두 차례의 섭정, 국가의 위기 속에서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떠나는 동안, 루이즈는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의 섭정을 맡았습니다. 첫 번째는 1515년, 아들이 이탈리아 원정을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두 번째는 더욱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수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포로로 잡히면서 왕국이 큰 혼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루이즈는 이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유지하고, 카를 5세에 맞선 반격 체계를 조직해냈습니다. 그녀의 안정적인 통치 덕분에 프랑스는 왕이 없는 기간에도 내부 붕괴를 피할 수 있었고, 이후 아들의 석방과 귀환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샤를 드 부르봉의 배신과 영지 회수

루이즈는 프랑스 대장군(코너타블) 샤를 드 부르봉의 배신 사건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녀가 부르봉의 방대한 영지를 노리고 법적 분쟁을 일으키면서 양측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부르봉은 황제 카를 5세 진영으로 넘어가 배신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 흘러, 부르봉이 전사한 후 루이즈는 그의 영지 대부분을 다시 프랑스 왕실로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