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스 리베(Élise Rivet)(1890~1945)는 '성체의 마리 엘리자베트 수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가톨릭 수녀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가였습니다. 그녀는 나치의 박해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한 헌신 덕분에 이스라엘이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 중 하나인 '열방 가운데 의로운 자(Righteous Among the Nations)' 칭호를 받았습니다.
성체의 마리 엘리자베트 수녀
해군 장교의 딸로 태어난 엘리스 리베는 1890년 1월 19일 알제리 드라리아(Draria)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녀는 스무 살 무렵 프랑스 본토로 건너왔으며, 1913년 23세의 나이에 리옹의 '노트르담 드 콩파시옹(Notre-Dame de Compassion)' 간호 수녀회에 입회했습니다. 이후 1933년에는 그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고, 이때 '성체의 마리 엘리자베트'라는 수도명을 받게 됩니다.
프랑스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빠른 패배를 맞이하자, 엘리자베트는 곧장 레지스탕스 활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이끄는 수녀원에 난민과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무기와 탄약을 은닉하며, 필요한 이들에게 위조 서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1944년 3월 24일, 밀고로 인해 조수인 마리 예수(Marie Jésus) 수녀와 함께 체포되어 게슈타포의 잔혹한 심문을 받았습니다.
수용소의 영혼
리옹의 몽퀴 요새(Fort Montluc) 감옥에 세 달간 수감된 동안, 엘리자베트는 앙드레 리비에르-페잔(Andrée Rivière-Paysan)이라는 여성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저는 식당에서 처음 엘리자베트 수녀님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인격과 존재는 가장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까지 빛을 발했습니다. 수녀님은 평온한 미소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맞아주셨고, 체포와 투옥의 충격에 지친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어머니'라고 부르던 그분 곁에 모여 있으면 안정감과 정신적 지지, 그리고 초자연적인 희망의 빛을 느꼈고, 더 이상 어떤 일도 닥쳐오지 않으리라 믿을 수 있었습니다."
1944년 7월, 엘리자베트는 베를린 근처의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수녀복을 거두당하고 가혹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끌려갔던 앙드레 리비에르-페잔은 그녀를 "이 수용소의 영혼"이라 불렀으며, "동료들 곁에서 고요함과 희망의 기둥이 되어 사랑으로 존재해 준 분"이라고 증언했습니다.
성체의 마리 엘리자베트 수녀는 1945년 3월 30일, 전쟁이 끝나기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독가스실에서 생명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1997년, 이스라엘은 그녀의 용기와 희생을 기려 '열방 가운데 의로운 자'로 명명하며 그 유산을 기렸습니다.